어린이가 만나는 더 넓고도 복잡한 삶
'어른'이라 함은 마치 세상의 이치 모두 알고 어려운 일도 초연하게 대처하며 매사에 침착하고 지혜로움을 가지고 살아갈 것만 같다.
나의 시점에서 어른의 모습은 점차 바뀌어왔다.
초등학생 때는 교복 입은 중학생이 어른 같아 보였고, 중학생 때는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어른 같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어떻게 저 어려운 대입시험을 뚫고 대학생이 된 20살 새내기들이 어른 같아 보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군대 갔다 온 선배들이 어른스러웠고, 졸업할 때쯤엔 취업한 이 세상 모든 사회인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존재감을 내뿜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사회초년생들은 직장에서 여전히 어린이다. 대학생도 진로를 고민하며 어쩔 줄 몰라 방황한다. 중고등학생 모두 부모님과 선생님의 따듯한 손길 아래 자기들만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번 다음의 삶은 어른인 줄만 알았지만 막상 가보면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그곳에선 다시 시작이다.
5-60대가 되면 어른이 될까... 아닌 거 같다.
추석, 설 명절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간다. 산소에 도착하면 내가 큰 느티나무라 생각했던 아버지, 어머니도 그곳에선 또 아들과 딸처럼 어린이가 된다. 또 그들만의 큰 느티나무에게 '잘 살아갈 테니 지켜봐 달라'. '최근엔 어떤 일'이 있었다. 등등 돌아오지 않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쏟아낸다.
이 글을 쓰는 도중 내가 봤던 드라마 중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 배우가 투정 부리는 딸에게 "아빠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엄마노릇, 아내 노릇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순간에 "어쩌면 이 세상에는 어른은 없고 어른인 척 사는 아이들만 있다"라는 대사로 위로를 건넨다.
그냥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여전히 하루하루 잘 살아내 보려는 발버둥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 레벨업 하여 전직하듯 어린이에서 경험이 쌓이면 어른으로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다.
그냥 어린이가 죽을 때까지 점점 더 넓고 복잡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어른 역할 놀이 하며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가끔은 실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자책하지 마.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