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건물은 총 14층까지다. 지하에도 꽤나 깊숙한 곳까지 주차장이 존재한다. 건물 내 9개의 엘리베이터는 별도의 알고리즘이 적용되어있지 않을 경우 효율적이 못하다. 각 층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빨리 타기 위해 9개의 버튼을 모두 누르게 되니, 9개의 엘리베이터는 거의 모든 층에서 한번씩 멈추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버튼을 누른 고객이 이미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을 확률이 대략 90%(8/9)임으로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선 이유 없이 해당 층에 멈춰 서게 되는 일도 빈번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출퇴근시간, 점심시간에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른다. 따라서 이에 대한 조치로 총 9개의 엘리베이터를 3개씩 3개 조로 나누게 되었다.
A조 : 전층 운행
B조 : 저층부 운행 (1~9층)
C조 : 고층부 운행(1~3, 9~14층)
그리하여 그나마 효율적으로 운행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층은 9층이다. 즉 저층부에서는 꼭대기에 해당한다. 9층에 근무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저층부의 꼭대기이기 때문에 복잡한 퇴근 시간에도 항상 엘리베이터를 먼저 잡아서 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7층의 경우 퇴근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면 이미 9, 8층에서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를 마주하기 때문에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물론 엘리베이터가 만원이 되면 층마다 멈추지 않고 1층까지 다이렉트로 내려가지만, 만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말은 즉, 7층 8층에서도 사람이 더 탈 수 있음에도 굳이 타지 않는다는 말인데, 아마도 꽉 차보이는 엘리베이터에 본인이 탔을 때 “삐- 만원입니다” 소리가 나게 될 경우 몹시 부끄러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다.
한번은 매우 번잡한 퇴근시간에 9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유독 사람이 많았던 날이라 9층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먼저 탑승한 후에야 겨우 남은 자리에 타게 되었고, 그 결과 엘리베이터 문 코앞에 내 얼굴을 맞대며 서있게 되었다. 그래도 만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8층, 7층, 6층 순으로 멈추게 될 운명이었다.
먼저 한 층 아래 8층에 멈춰 섰다.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8층 사람들이 보였다. 문이 더 열리며 그들에게 매우 꽉 찬 엘리베이터 내부가 보이게 되었고, 탈 자리가 없자 허탈한 그들은 최전방에 서있는 나를 쳐다보며 기겁하는 표정을 짓는다. 기분이 묘하다. 나를 벌레 보듯이 쳐다보니, 나는 벌레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나는 그저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그들을 맞이하는 최전방에 탑승했을 뿐이다. 아무튼 8층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곧이어 7층에 멈춰서 문이 열렸다. 7층 사람들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 못 볼 것을 본듯한 표정, 퇴근시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으나 엘리베이터 때문에 빨리 가지 못해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을 나를 보며 짓는다. 문득 작년 어느 겨울 서울 수족관에서 본 심해어가 떠올랐다. 그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심해어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할 이유는 없기에 본능에 충실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 물고기가 느낀 감정이 이러했을까. 그도 아무런 죄 없이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다. 7층에도 역시 아무도 타지 않았다.
6층에 멈춰섰다. 문이 열렸다. 몇몇 사람들이 놀라 벌어진 입을 손으로 살며시 틀어막는다. 그들은 마치 오래 기다려왔던 생일 선물이 담긴 큰 박스를 뜯어보았는데, 그 속에 바퀴벌레가 들어있었을 때나 지을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새 익숙해진 그 광경을 기겁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표정일 거라고 합리화했다. 사실 엄청난 경이로움과 기겁의 표정은 한 끗 차이니까. 기깔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미간을 찌푸리는 현상과 비슷하달까. 아무튼 그렇게 6층도 아무도 탑승하지 않은 채 문이 닫힌다.
기분이 묘한 날이었다. 문득 태어나보니 이유 없이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