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현 Dec 20. 2024

총알택시와 한 송이 장미꽃

총알택시와 한 송이 장미꽃

새벽 한 시,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붉은색 긴 원피스를 입은 키 큰 아내는 현관문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어 젖혔다. 평소 순한 눈빛은 어디 가고 아내는 매섭게 나를 쏘아보았다. 

하긴, 남편이라고 수시로 술타령에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니 그럴 법도 하였다. 업무의 연장으로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퇴근하며 들러 동료들과 마시는 ‘한잔’은 나의 놀이일 뿐이다. 한잔하다 보면 두 잔으로 이어지고 어느덧 하루를 넘겨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 적도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조용히 들어 오다가 어둠 속에서 잠도 안 자고 오도카니 앉아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3년간 서울서 단칸 셋방에 살다 88올림픽 하던 해에 은행 대출받아 인천 부평에 18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내 집 마련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던 당시에 비록 서울 전세보다 쌌지만 어찌 되었건 서른 살 나이에 남들보다 조금 빨리 내 집 마련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남편의 박봉을 아끼고 아낀 아내의 노력 덕분이었다.

문제는 출퇴근이었다. 나는 버스와 전철 또 버스를 타고 2시간을 시달려야 회사에 도착했다. 우리 네 식구 생목숨이 달린 일터에 가려고 산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 대장정을 매일 같이 반복했었다. 

출근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퇴근 때 술자리가 있어 12시가 넘으면 귀갓길은 가시밭길이었다. 우선 총알택시를 타기 위해 신촌까지 시내 택시를 탄다. 당시 수원, 안양, 인천, 부평 등 서울 외곽에 둥지를 튼 나 같은 사람들은 서울로 출퇴근하며 버스나 전철과 같은 일반 대중교통이 운행 중지된 심야에 신촌, 영등포, 사당 등지에서 총알택시를 타야만 했다. 총알택시는 손님을 한 차 가득 태우고 신호와 제한속도를 무시하며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내달리는 택시를 말한다. 

손님을 네 명 태우기 때문에 택시기사의 호객행위 속에서 앞 좌석부터 시작하여 뒷좌석에 한 사람씩 포개져 머릿수가 차면 출발한다. 경차보다 조금 큰 포니 택시에 장정 다섯 명을 태우고 시속 140 ~ 150km로 달렸다. 택시 기사 그들도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목숨 걸고 달려서 속히 돌아와 한 번 더 뛰어야 했다. 

과음하면 드라이브 기분이 나지만, 먹다 만 술일 때에는 제 분수도 모르고 달리는 포니 택시 속에서 집에 갈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좁은 차 안에서 의기 투합한 취객들은 내려서 한 잔 더한다. 나도 어쩌다 그랬다. 어떤 치들은 뭐가 뒤틀렸는지 욕지거리에 내려서 싸움박질도 한다. 총알택시는 삶의 이면도로였다.

이런 차를 자주 타고 다녔으니 늦는 것도 괘씸한데 사고 위험까지 있는 터, 아내는 술 좋아하는 남편이 더더욱 미웠을 것이다. 총알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지점 근무할 때는 활동비가 나오므로 용돈에 더하여 충당이 가능했지만 본사 근무할 때에는 활동비가 없으므로 늦으면 세 번의 택시비를 내 용돈으로 대야 했다. 

그날은 월 마감하던 날이었다. 실적이 좋건 아니건 한 달을 마감하였기에 직원들은 홀가분과 또 한 달의 부담감이 섞인 채, 지점에서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입에 털고 오징어 다리를 씹었다. 나도 동료들과 권커니 잣거니 잔을 주고 받았다. 

사무실을 나서며 뭔가 부족한 듯 동료들과 대폿집과 생맥주집을 거쳐 포장마차에서의 입가심 한 잔으로 오늘 술자리를 마감했다. 역시 많이 마셨고 덕분에 위장이 혹사당했다. 술에 장사 없다는데 주종도 안 가린 여러 종류의 술이 무방비상태인 위장에 침투하여 헤집는 바람에 내 위는 백기 투항했다. 과음에는 속이 쓰려야 제격이라, 신촌에서 총알택시를 기다리던 나는 포장마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 두 고치를 급하게 먹고는 국물까지 비움으로써 그날의 술 일과를 끝냈다. 

총알택시를 타려고 신촌까지 왔다. 눈은 풀리고 다리도 약간 휘청였지만 집에서 잠도 안자고 나를 기다릴 아내가 떠 오르는 중, 노상에서 파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요 며칠 계속 술타령에 늦게 귀가하여 아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오늘도 열두 시를 넘겼으니 면목이 없었다. 

‘그래, 꽃을 사 들고 가자. 좋아 할거야. 잘하면 야단도 맞지 않겠지.’ 

밤 12시가 넘어도 신촌로터리에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여 꽃 파는 행상이 늘 여럿 있었다. 

아내가 요즘 즐겨 입는 옷 색깔과 같은 빨간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기실, 술로 얇아진 지갑 때문이지만 그 탓은 뒤로하고, ‘다발로 묶어 파는 꽃은 특별하지 않으니 뭔가 색다르게 해야겠어’라며 빨간 장미꽃 한 송이만 달라고 했다. 취객들의 넘치는 호기에 다발로 꽃을 팔았음에 틀림없던 꽃 파는 아줌마는 약간의 실망한 기색을 슬며시 드러냈지만 나의 결심을 돌릴 수는 없었다. 

장미 한 송이를 비닐에 싸서 들고는 총알택시에 올라 뒷좌석 창가에 앉았다. 이어 장정 두 사람이 포니 택시에 더 타니 옴짝달싹할 수 없이 포박당한 처지였다. 차가 출발하며 과속으로 달리자 차와 사람이 흔들렸다. 나는 비좁은 차 안에서의 불편함은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한 송이 장미꽃이 혹시나 꺾일세라, 신주 모시듯 두 손으로 받쳐들었다. 대취 상태라 총알택시의 과속에 시원한 느낌이 들어야 했지만 나의 온 신경은 꽃에 가 있었다. 기사 빼고는 모두 취객이니 좁은 차 안에서 내뿜는 술 냄새에 기사는 가끔 창문을 열곤 했는데 세게 들어오는 바람에 꽃이 상하지 않게 더 조심해야 했다. 드디어 무사히 도착했다. 

화가 나서 쏘아보는 아내에게 취한 남편은 현관문에 서서 등 뒤에 감춘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잠시동안 아내는 꽃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눈꼬리를 살포시 내렸다. 요 대목에서 “장미꽃이 당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꽃에 내 마음을 담았어.”라는 말 한마디는 화룡점정이었다. 드디어 아내의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작전 성공이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다. 

오로지 작전만이었을까? 돈도 쓸 줄 알고 멋도 낼 줄 알지만 없는 집에 시집와 자린고비로 억척스레 살림하며 어린 자식 둘을 고옵게 키우던 아내에게 술 좋아하는 철없는 남편은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처음으로 꽃을 사 보았다. 아내는 좋아했다. 다만 세 번 만에 취중 한 송이 꽃 선물은 종지부를 찍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제 본심을 아내에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