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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벌어지지 않을 일로 두려워하지

by 어니

지난 주말, 미묘하게 다운돼있는 준영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뭘 해도 반응이 미적지근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귀 기울이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은근한 짜증이 말투에 배어있는 모습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뭔가 마음에 걱정거리나 부담이 있는 것이다. 이럴 때면 늘 그렇게 되듯이 부부가 결국 또 조금 투닥거리다가, 터놓고 대화를 하게 됐다. 결국은 또 미래에 헤쳐나가야 할 여러 문제에 대한 답 없는 고민들이 얽힌 실타래처럼 마음속에 꼬여 있는 것이었다. 미래에 일어날지 아닐지 모르는 일에 지금 우리가 모든 대책을 세울 순 없다고, 모든 상황에 대비한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금 당장 결정과 준비가 필요한 일들에만 집중하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은, 속이 예민해져 있기는 그만의 일이 아니었다. 날카로워져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그렇기 때문에 남편의 평소와 다름이 내게 거슬려온 것일지도..). 나는 며칠 전 지인들과 오고 간 대화 속에 작고 사소한 어떤 일 하나가 마음에 걸려서 그 의미를 혼자 확대해석해서 곱씹고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내가 무능하다는 생각, 쓸모없다는 생각, 부적격하다는 생각, 누군가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내 어마어마한 두려움은 별로 근거가 없고, 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신경 쓰는 그 일도 사실은 나와는 무관한 일일지 모른다(백 프로 그렇다고는 아직도 못하고). 세상 모든 일이 나에 관한 것은 아니므로 나라는 사람의 관점에서 모든 일의 의미를 따질 필요도, 모든 사건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 우리 상상 속의 재앙으로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 사실은 다 잘 될 거라고, 걱정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해줘야만 한다. 너의 가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고,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은 네 생각보다 많다고.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의 길도 잘 헤쳐나갈 거라고. 네게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네 두려움처럼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너는 네게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도, 힘은 들겠지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그 결과는 고생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고. 그리고 그 고생의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지만은 않고 충분히 즐겁기도 할 것이라고.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은 지독하게도 들어 있기 때문에, 지겨워도 계속, 서로에게 그렇게 말해줘야 한다.


연휴에 준영과 둘이 음악 들으러 갔던 LP바. 아… 그러고보니 연휴가 너무 길고 즐거웠어서 일상복귀가 무서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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