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에 관한 한 청년의 에세이
[ 이번 글은 '한센병'이라는 중심 주제가 있는 글이니, 참고하시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한센병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부모님의 가치관 아래에서 자란 나는 참 다양한 곳으로 여행할 일들이 많았다. 그날은 아버지의 직장 동료의 고향인 고흥군으로 차를 타고 향했다. 서울이 고향인 나에게 고흥군은 너무나도 멀고, 어색한 곳. 아주 긴 여정의 끝에는 익숙한 서울의 회색빛 대신 낯선 고요가 잠식한 곳이었다.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야기를 속삭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고흥군에서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여행 중 소록도에 방문했을 때, 흐릿하게 기억하는 그 장면들은 어쩌면 나의 무관심이 만들어 낸 무채색의 잔상일지도 모르겠다.
소록도의 첫인상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살폈다. 차에서 내린 순간 아주 묵직한 바람이 날 맞이했다. 앞에는 아주 광활하고 넓게 펼쳐진 바다가 있었고, 그 뒤로 이어진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벽화들이 있었다. 그 벽화들은 마치 내면에 감춰진 차가운 장면들은 감추고자 덮어진 페인트칠로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소록도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은 과거에 사용되던 건물이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그려진 벽화들이었다.
사실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한센병에 대한 기억은 이게 전부이다. 그리고 한센병이라는 단어보다는 문둥병이 더 익숙하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렴풋이 들어본 병, 한센병. 한때'문둥병'이라 불리던 이 병은 내게,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저 전염되는 병으로 과거에 탄압을 받았다고 알고 있고, 남의 일이니,관심 없을 것이다. 나도 그러한데 누가 누굴 평가할 자격이 있겠는가.
한센병은 의학적으로 이미 오래전에 관리 가능한 병으로 밝혀졌지만, 그 병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한센병을 앓았던 이들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만 했고, 그 사회적 거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24년 지금도, 소록도에서는 환자들과 비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따로 분리되어 있다. 환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관리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주 오랫동안 지겹게 지속된 ‘차별’의 이름 아래에서 사람들은 편안함과 안심을 찾으려 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이 단지 신체적인 고통이 아닌, 외로움과 격리 속에서 생긴 고통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한센병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병 자체가 아니게 된 지 아주 오래되었다. 그들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아주 날카로운 사회의 시선이 그들이 조여오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그들만의 고통이 아니다. 세상의 무지와 오만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벽을 확인하고도 외면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는 그들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아픔과 외로움 속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키워야만 했다. 그 과정은 우리의 무지와 오만을 증명하는 거울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되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야 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그 무지 속에서 또 다른 사회가 생겨났고, 그 사회 속 사회는 외부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벽이 되어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어렸을 때 갔던 소록도, 그 공간에 남겨진 흔적들은 그들의 외로움의 결과물일 것이다. 차에서 내린 순간 느꼈던 묵직한 바람은 내 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 덕분이라기보단, 그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독의 바람이 나의 피부에 보이지 않는 무게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 본 벽에는 한센병 환자 한 명 한 명이 담고 있던 그들의 상처,그리고 그들만의 시간을 견뎌온 흔적들이 우리의 편견을 담고 있다. 그때와 달리 많은 것이 변했지만, 한센병 환자들이 겪은 고통과 배제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내가 봤던 소록도의 소름 돋는 벽화와 벽은, 사람들의 무지가 세운 벽이니 소름 돋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그 벽 위에 그려진 벽화는 차가운 무관심 위에 덧칠한 얕은 위로처럼 보였고, 그 위로 드리워진, 오래된 그림자는 다른 이들을 몰아내던 차가운 시선의 잔해였다.
소록도는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의 섬이었다. 벽 너머로 시선을 두르자, 아직도 나를 밀쳐내는 무거운 고요가 있었다.
우린 흔히‘공포’와‘거부감’을 병 그 자체로 치환한다.한센병은 그들에게 만의 병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핑계로 외면하는 이기적인 무지의 초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병보다 더 뿌리 깊은 병폐는 바로 우리의 시선이 그들에게 박아온 고통일지 모른다. 그러니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다른 이들에게서 등 돌리고, 보이지 않는 차가운 벽 뒤로 밀어낸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한센병이라는 벽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아픔만큼이나 무겁고 춥다. 외부에서 만든 날카로운 창살 속에 갇혀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 했던 이들에게 한센병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사회적 고통이 되었고, 그로 인해 진정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추운 벽의 겨울에 갇혀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사회적 해방이다.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우리와 다른 것 없다고 여기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해방.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있는 한센병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그들과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그러니 어찌 그것이 온전한 이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많은 이들이 온전한 이해를 위한 두려움을 없애도록 사회적 장치와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일이야말로 이 사회가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다.
병의 치유는 의학이,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들 가슴속 깊은 곳에 새겨진 시선의 칼집은 시간마저 무디게 만들었다.그 칼집은 쉽게 아물지 않고, 되려 그 위로 우리의 무지만이 얹힌다. 아무리 의학이, 과학이 발전해도 그들 마음에 박힌 칼은 녹슬기만 할 뿐 결코 뽑히지 않는다. 바뀌어야 하는 건 그저 우리일 뿐이다. 우리가 세운 차가운 벽을 넘어뜨리고, 그 벽은 곧 그들로 향하는 다리가 되어야만 한다.
그들은 아주 오래도록 지겹게 지속된, 무지의 피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