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이 제공하지 않는것들
_사업관리자편

현 법령만으로사업관리자가 AX RFP를 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

by 분석과통찰

AI 기본법이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공공기관의 사업관리자는 이 법령 체계를 근거로 AX(AI Transformation) 전환 사업의 RFP를 작성하고 발주하고 원하는 AX 전환을 위한 전략과 사업수행방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법령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의 울타리와 범위는 정의했지만, ‘어떻게 AX 사업을 설계하고 발주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법령의 결함은 아닙니다. 법령은 애초에 그런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사업관리자가 AX 전환 사업의 RFP를 작성하는 과정을 7단계로 나누어 따라가면서, 각 단계에서 법령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법령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법령과 실무 사이에 ‘사업 수행 방법론’이라는 레이어가 통째로 빠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궁금해 할만한 것에 대해 먼저 답을 한다면 오랫동안 적용했던 ISP와 ISMP 방법론을 AX 전환 사업에 적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사업관리자가 AX 사업 RFP를 작성을 위한 고려사항

1단계: 사업의 필요성과 목적 정의

“우리 조직은 왜 AX를 해야 하는가?”


AI 기본법 제3장은 정부가 AI 산업을 육성하고, 공공기관의 AI 도입을 지원한다는 국가 차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정책의 방향이지, 개별 조직이 왜 AI 전환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업관리자가 RFP의 첫 장을 쓰려면, ‘우리 조직에서 AI 전환이 필요한 근거’를 논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수준의 진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 우리 업무 중 AI로 대체하거나 증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전환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누적되는가?, 전환하면 어떤 가치가 만들어지는가?. — 기존 정보화 사업에는 정보화 수준 진단, EA 현황 분석, BPR 대상 식별 같은 정형화된 도구가 있었지만, AX 전환에는 기존 도구를 적용하기 어려우며 새로운 진단 프레임워크에 대한 언급은 법령에도, 관련 가이드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RFP는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하여’,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와 같은 선언적이고 모호한 문장으로 사업 필요성을 서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업의 출발점이 모호하면 이후의 모든 단계 — 범위 설정, 요구사항 정의, 성과 측정 — 도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필요성 진단 프레임워크, 조직 수준의 AI 전환 준비도(Readiness) 평가 도구



2단계: 사업 유형의 분류

“이 사업을 무엇으로 발주해야 하는가?”


공공 정보화 사업에는 정해진 유형 분류가 있습니다. ISP(정보화 전략 계획), ISMP(정보시스템 마스터플랜), SI(시스템 구축), SM(운영·유지보수) 등입니다. 각 유형에는 대가 산정 기준, 투입 인력 기준, 산출물 목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업관리자는 이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해서 발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AX 전환 사업은 이 분류 체계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습니다. ‘AI 전환 전략 수립’이라는 사업 유형 자체가 제도적으로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업관리자는 기존 유형 중 하나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불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 유형이 산출물과 대가를 결정하기 때문에, 잘못된 유형 선택은 사업의 범위와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AI 전환에 필요한 업무 재설계, 변화관리, 데이터 전략 같은 활동이 산출물 목록에 포함되지 않으면, 수행사는 이를 수행할 근거도, 대가를 청구할 근거도 없게 됩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의 유형 정의, 해당 유형에 맞는 산출물 체계와 대가 산정 기준



3단계: 현황 분석과 진단 범위 설정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가?”

전통적 IT컨설팅 RFP에는 반드시 ‘현황 분석’ 항목이 들어갑니다. 기존 ISP에서는 정보시스템 현황, IT 인프라 현황, 정보화 조직 및 인력 현황 등을 분석 범위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분석 항목들은 수십 년간의 정보화 사업 경험이 축적되어 정형화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AX 전환에서는 분석해야 할 대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현재 업무 중 AI로 대체하거나 증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I로 재설계할 때 가장 높은 가치를 만드는 업무 영역은 어디인가’, ‘조직의 데이터가 AI 학습에 활용 가능한 품질과 양을 갖추고 있는가’, ‘구성원의 AI 활용 역량 수준은 어떠한가’ —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기 위한 분석 프레임워크가 필요한데 부재한 상황입니다.


법령에는 이러한 진단 항목의 정의에 대해선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AI 기본법의 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이 가장 가까운 참조점이지만, 이것은 고영향 AI의 기본권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지, 조직의 AI 전환 준비 상태를 진단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사업관리자는 ‘무엇을 분석하라’고 RFP에 써야 할지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 ISP의 분석 항목을 그대로 옮겨 적거나, 막연하게 ‘AI 도입 현황 분석’이라 과제를 제시하고 사업을 진행해야만 합니다.


부재한 것: AX 성숙도 모델, AI 전환 준비도 진단 프레임워크, 업무별 AI 전환 가치 평가 도구



4단계: 요구사항 정의

“수행사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이 단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기존 정보화 사업의 요구사항은 ‘어떤 기능을 가진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형태입니다. 기능 요구사항(Functional Requirements)과 비기능 요구사항(Non-Functional Requirements)의 분류 체계가 잘 정립되어 있었고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AX 전환 사업의 핵심 요구사항은 ‘업무를 AI 중심으로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를 제시하라’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기능 요구사항도 비기능 요구사항도 아닌, 전환 설계에 대한 요구입니다. 현 시점에서 사업관리자가 요구사항을 RFP에 어떤 형식으로, 어떤 수준으로 기술해야 하는지 참고할 사례와 기준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까다로운 문제도 있습니다. 법령 준수 요건을 요구사항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입니다. AI 기본법과 관련 규정에서는 고영향 AI 해당 여부 판단, 투명성 확보 조치, 안전성 확보, 영향평가 수행 등의 의무와 권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업관리자는 이 법령 요건을 RFP에 반영해야 하지만, 어떤 수준에서 어떤 형식으로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또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령은 ‘사업자가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발주자가 ‘이것을 RFP에서 어떻게 요구하라’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 요구사항 분류 체계, 법령 준수 요건의 RFP 반영 가이드, 전환 설계 요구사항 작성 템플릿



5단계: 제안 평가 기준 설정

“수행사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기존 정보화 사업의 기술평가 기준은 기술 이해도, 사업 수행 방법론, 유사 사업 수행 실적, 투입 인력의 자격과 경험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 항목들과 배점 기준은 조달 제도 안에서 오랜 기간 다듬어져 왔고 수행사의 역량을 평가하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AX 전환 사업에서는 평가해야 할 역량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AI 기술 역량은 기본이고, 그 위에 업무 재설계 역량, 변화관리 역량, 데이터 전략 수립 역량, AI 윤리·거버넌스 설계 역량 같은 것들이 함께 평가되어야 합니다. 또한 법령에서 요구하는 안전성 확보, 투명성 확보, 영향평가 등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도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량을 어떤 기준으로 판별할지, 기존 기술평가 항목과 어떤 비율로 배점할지, 유사 사업 실적은 무엇을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까진 존재하지 않습니다. AX 전환 사업의 수행 실적 자체가 시장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사 사업 실적’이라는 평가 항목 자체가 정상 작동하기 어렵고 사실상 무의미하기까지 합니다.


현실에서는 기존 조달시스템과 기술평가 항목 기준 그리고 동일한 요구사항으로 AX 사업을 발주하고 수행사를 선정하는 프로세스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 기술평가 기준 모델, 수행사 역량 평가 항목 및 배점 가이드



6단계: 산출물과 완료 기준 정의

“무엇을 받아야 사업이 끝나는가?”


ISP의 산출물은 정보화 전략 보고서, 과제 정의서, 이행 로드맵 등으로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각 산출물에 포함되어야 할 항목, 분량 기준, 품질 검수 방법까지 가이드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사업관리자는 이 목록에서 사업의 성격에 맞는 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AX 전환 사업의 산출물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AI 전환 대상 업무 목록, To-Be 업무 프로세스 설계서, AI 모델 요건 정의서,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설계서, 변화관리 계획서, AI 윤리·거버넌스 프레임워크 — 이런 산출물들이 후보가 될 수 있지만, 이 목록 자체가 규정이나 지침으로 정의된 것이 아닙니다. 각 산출물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어떤 수준이면 완료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도 현재는 없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산출물 목록과 완성도에 대한 정의가 부재하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발주자는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고, 수행사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업 종료 시점에 ‘이게 끝인가’를 두고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 산출물 목록 표준, 산출물별 포함 항목 정의, 품질 기준 및 완료 인정 기준



7단계: 대가 산정과 사업 기간 결정

“얼마를 주고, 얼마나 걸리는 사업인가?”


오랫동안 적용해 왔던 소프트웨어 사업 대가 산정 가이드는 기능점수(FP) 기반이거나 투입 공수 기반입니다. 정보화 사업의 규모를 측정하는 단위와 공식이 정해져 있어, 사업관리자는 이를 근거로 예산을 산출합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발주되었던 AX 사업에서도 가이드를 기준으로 사업을 발주하고 대가 산정을 하고 있습니다.


AX 전환 사업의 규모와 복잡도를 어떤 단위로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까진 없습니다. 전환 대상 업무의 수? 영향을 받는 인력의 규모? 필요한 AI 모델의 종류와 수? 데이터 정비의 범위? 이 중 어떤 변수가 사업 규모를 결정하는지, 각 변수가 비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산정 모델이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업 기간도 마찬가지입니다. ISP는 통상 4~6개월, SI는 규모에 따라 6개월에서 여러 해에 걸쳐서 이뤄집니다. AX 전환 사업의 적정 기간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까요?


현장에서는 ‘비슷한 규모의 ISP 사업’을 참고해서 예산과 기간을 잡는 일이 반복되는데, AX 전환의 범위와 깊이가 기존 ISP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예산이 과소 책정되거나 사업 기간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 대가 산정 모델, 사업 규모 측정 변수 정의, 적정 사업 기간 산정 기준


단계

결론: 법령이 부족한 것이 아니지만…

법령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AI 기본법은 산업 육성의 방향을 제시하고, 윤리와 신뢰의 기반을 만들고, 위험이 높은 영역에 최소한의 안전망을 설정하는 것 — 이것이 법령의 몫 입니다.


그러나 사업관리자가 제안요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사업 유형 정의, 진단 프레임워크, 요구사항 작성 가이드, 평가 기준, 산출물 체계, 대가 산정 기준 — 은 법령의 영역 바깥에 있고 현재 비어있는 영역입니다. 법령이 부족한 게 아니라, 법령과 실무 사이에 ‘사업 수행 방법론’이라는 레이어가 통째로 누락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차를 아무리 정밀하게 분석해도 자동차의 설계도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존 정보화 사업의 발주 체계를 아무리 꿈꿈하게 따라가도, AX 전환 사업의 RFP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업에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질문을 사업 수행자의 관점에서 다루어보려 합니다. 수행사가 제안서를 쓰고, ISP/ISMP를 수행하고, 실제 AX 전환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방법론의 공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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