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법령만으로수행자가 AX 컨설팅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
앞선 글에서는 사업관리자의 관점에서, AX 전환 사업의 RFP를 작성하는 7단계 각각에서 법령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정리했습니다. 법령과 실무 사이에 '사업 수행 방법론'이라는 레이어가 통째로 빠져 있다는 것이 그 글의 결론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같은 질문을 반대편에서 던져봅니다. RFP를 받아든 수행사의 입장입니다. 제안서를 쓰고, 사업을 수주하고, 실제로 AX 전환을 설계하고 납품하는 과정에서 수행사가 마주하는 방법론의 공백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발주자 쪽의 공백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었다면, 수행사 쪽의 공백은 '무엇을 제안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공백은 서로를 증폭시킵니다.
수행사가 제안서를 쓰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RFP를 읽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기존 ISP/ISMP 사업에서는 이 과정이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RFP에 적힌 사업 범위, 분석 대상, 산출물 목록을 읽으면 고객이 기대하는 결과물의 윤곽이 잡혔고, 수행사는 그 안에서 차별화된 방법론과 접근법을 제안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AX 전환 사업의 RFP는 다릅니다. 앞선 글에서 확인했듯이, 발주자 자체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없이 RFP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필요성은 선언적이고, 요구사항은 기존 ISP 체계를 차용하고 있으며, 산출물 목록은 불명확합니다. 수행사는 RFP의 행간을 읽어야 하지만, 행간에 적힌 것이 고객 스스로도 정리하지 못한 기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상황에서 수행사에게 필요한 것은 '불명확한 RFP에서 진짜 전환 과제를 도출하는 해석 프레임워크'입니다. 고객이 'AI 도입'이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업무 재설계'를 원하는 것인지, 'AI 시스템 구축'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환 전략 수립'을 원하는 것인지를 판별해야 합니다. 이 판별이 잘못되면 제안서의 방향 전체가 어긋나게 됩니다.
부재한 것 AX 사업 RFP 해석 프레임워크, 고객 요구의 전환 유형 판별 기준, 제안 전략 수립 가이드
기존 ISP/ISMP 제안서에는 반드시 '사업 수행 방법론' 장이 들어갑니다. 수행사마다 자체 방법론의 이름과 프레임워크를 갖고 있지만, 그 구조는 대동소이합니다 — 환경 분석, 현행 업무·시스템 분석, To-Be 모델 수립, 과제 도출, 이행 로드맵 작성. 이 구조가 수십 년간 반복되며 검증되어 왔기 때문에, 평가위원도 이 흐름 안에서 수행사의 역량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AX 전환 사업에서 수행사는 무슨 방법론을 제시해야 할까요? 기존 ISP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오면, 'AI'라는 단어만 붙었을 뿐 본질적으로 정보화 전략 수립과 다를 것이 없는 제안서가 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자니, 참조할 수 있는 검증된 AX 전환 방법론이 시장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렇습니다. 수행사는 기존 ISP 방법론의 골격에 'AI 과제 도출', 'AI 적용 설계' 같은 단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제안서를 구성합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ISP 방법론의 전제는 '현행 업무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것'인데, AX 전환의 전제는 '업무를 AI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발점의 전제가 다른 방법론 위에 전환을 얹는 것은, 마차의 설계도 위에 엔진을 그려 넣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전용 사업 수행 방법론, 방법론의 단계·활동·기법 정의, 기존 ISP 방법론과의 차이점 명시
기존 컨설팅 사업의 투입 인력 구성은 명확했습니다. PM(프로젝트 관리자), 업무 분석가, 기술 아키텍트, 데이터 모델러 등 역할이 정형화되어 있고, 각 역할에 요구되는 자격 기준 — 기술사, PMP, 유사 사업 참여 경력 등 — 도 조달 제도 안에서 정립되어 있었습니다.
AX 전환 사업에는 어떤 역할이 필요할까요? AI 기술 전문가는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업무 프로세스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 조직의 변화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 AI 윤리와 거버넌스를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 데이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역할들은 기존 투입 인력 분류 체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인력이 시장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AX 전환 사업 자체가 새로운 유형이기 때문에, '유사 사업 수행 경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인력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수행사는 제안서에 투입 인력의 역량을 기술해야 하지만, 그 역량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AI 기술 자격증은 있지만, 'AI 중심 업무 재설계 역량'을 인증하는 자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사업 투입 인력 역할 분류 체계, 역할별 필요 역량 정의, 역량 검증 기준
사업이 시작되면 수행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현황 분석입니다. 기존 ISP에서는 분석의 대상과 방법이 체계화되어 있었습니다. 정보시스템 현황 조사표, 업무 프로세스 매핑(AS-IS BPM), IT 인프라 점검 체크리스트, 이해관계자 인터뷰 가이드 — 이런 도구들이 수십 년간 축적되어 있었고, 주니어 컨설턴트도 이 도구를 따라가면 일정 수준의 분석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AX 전환에서 수행사가 분석해야 할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현재 업무 중 AI로 대체 가능한 것과 증강 가능한 것의 구분', '업무별 AI 전환 시 창출되는 가치의 크기 추정', '조직 데이터의 AI 활용 가능성 평가', '구성원의 AI 수용도 및 활용 역량 측정' — 이런 분석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와 기법이 필요한데, 표준화된 것이 아직 없습니다.
인터뷰 하나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기존 ISP에서 현업 담당자를 인터뷰할 때는 '현재 업무의 불편한 점', '시스템 개선 요구사항' 등을 묻는 반구조화된 질문지가 있었습니다. AX 전환 인터뷰에서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요? '당신의 업무 중 반복적 판단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AI가 당신의 업무를 보조한다면 어떤 형태를 원합니까?' — 이런 질문은 기존 인터뷰 가이드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현업 담당자가 AI가 무엇인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재한 것 AX 현황 분석 도구(체크리스트, 조사표, 인터뷰 가이드), 업무별 AI 전환 가치 평가 기법, 데이터 AI 활용 가능성 진단 도구, 조직 AI 수용도 측정 도구
이 단계가 AX 전환 사업의 핵심이자, 방법론 공백이 가장 극심한 지점입니다.
기존 ISP/ISMP에서 To-Be 설계란 현행 업무 프로세스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보시스템의 목표 아키텍처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BPR(업무 프로세스 재설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기존 프로세스의 '개선'에 가까웠습니다. 프로세스의 골격은 유지한 채 병목을 제거하고, 수작업을 자동화하고, 정보 흐름을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AX 전환의 To-Be 설계는 차원이 다릅니다. 'AI가 중심이 되는 업무'란,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유지하면서 AI를 도구로 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사람과 AI의 역할 분담이 재정의되고, 업무의 순서와 흐름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판단을 AI가 하고, 어떤 판단을 사람이 하며, 그 경계는 어디이고, 예외 상황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 이런 설계를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설계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존 BPR 도구인 프로세스 맵, 데이터 흐름도, 유스케이스 다이어그램으로는 AI 중심 업무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사람-AI 협업 모델, AI 판단의 신뢰도 기준, 담당자 개입(Human-in-the-Loop) 정책, AI 오류 시 폴백 프로세스 같은 새로운 설계 요소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와 표기법이 필요한데, 표준화된 것이 없습니다.
수행사는 이 설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이 없기 때문에, 각 수행사가 자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산출물의 형식도, 깊이도, 품질도 수행사마다 제각각이 됩니다. 발주자가 이 산출물의 적정성을 판단할 기준도 없으니, 사업 완료 시점에 '이것이 진짜 AX 전환 설계인가'를 두고 합의하기 어렵습니다.
부재한 것 AI 중심 업무 재설계 방법론, 사람-AI 역할 분담 설계 프레임워크, AI 중심 프로세스 설계 도구 및 표기법, To-Be 설계 품질 검증 기준
기존 ISP/ISMP 사업에서 변화관리는 보통 부수적인 활동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따른 교육 계획, 업무 매뉴얼 작성,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계획 정도가 변화관리의 범위였고, 전체 산출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았습니다.
AX 전환에서 변화관리는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핵심 활동입니다. AI가 업무의 중심으로 들어오면, 구성원의 역할이 바뀝니다. 어떤 업무는 축소되고, 어떤 업무는 새로 생기며, 기존에 사람이 하던 판단을 AI가 대신하게 됩니다. 이 변화에 대한 구성원의 불안, 저항, 수용을 관리하는 것은 기술 도입보다 어렵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수행사가 이 변화관리를 어떻게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AX 맥락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성원의 AI 수용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 'AI로 인해 역할이 변경되는 인력의 전환 경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AI 도입에 대한 조직 내 저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 이런 질문에 대한 체계화된 접근법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변화관리 활동이 사업의 산출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이, AX 전환 사업의 산출물 체계가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변화관리 계획서나 조직 전환 로드맵이 정식 산출물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산출물이 아닌 활동에 대해 수행사는 인력을 투입할 근거도, 대가를 받을 근거도 없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AX 전환의 성패를 좌우하는 활동이 사업의 범위 바깥으로 밀려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변화관리 방법론, 구성원 역할 전환 설계 프레임워크, AI 수용도 제고 전략 가이드, 변화관리 활동의 산출물 인정 체계
AI 기본법과 관련 규정은 고영향 AI 판단, 투명성 확보, 안전성 확보, 영향평가 수행 등을 의무 또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수행사는 AX 전환 설계 과정에서 이 법령 요건을 실무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령은 '무엇을 해야 한다'를 규정할 뿐, '어떻게 해야 한다'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법령의 본질적 한계이자, 수행사에게는 실무적 공백입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겠습니다. 법령은 고영향 AI에 대한 영향평가를 요구합니다. 수행사가 전환 설계 과정에서 '이 AI 적용이 고영향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고, 해당된다면 영향평가를 수행하여 산출물에 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향평가의 구체적 수행 절차, 평가 항목의 세부 기준, 결과의 문서화 양식에 대한 실무 가이드가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법령은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말하지만, AI 모델의 판단 근거를 어떤 수준으로 어떤 형식으로 이용자에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무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수행사 입장에서 더 어려운 것은, 이 법령 준수 활동을 사업의 어느 단계에서, 어떤 순서로, 어떤 깊이로 수행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령 준수는 전환 설계와 별도의 활동이 아니라, 전환 설계의 매 단계에 내재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통합 방법에 대한 가이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재한 것 AI 기본법 준수 요건의 실무 이행 가이드, 영향평가 수행 절차서, 법령 준수 활동과 전환 설계의 통합 방법론
이 단계의 고충은 발주자 편에서 다룬 것과 정확히 대칭됩니다. 발주자가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문제의 반대편에, 수행사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ISP/ISMP에서 수행사가 작성하는 산출물은 고도로 정형화되어 있었습니다. 정보화 전략 보고서의 목차 구조, 과제 정의서의 기술 항목, 이행 로드맵의 표현 방식 — 이런 것들이 업계의 암묵적 표준으로 공유되어 있었고, 수행사는 이 표준 위에서 내용의 질로 경쟁했습니다.
AX 전환 사업에서는 산출물의 형식 자체가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AI 전환 대상 업무 목록'에는 어떤 항목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To-Be 업무 프로세스 설계서'에서 사람-AI 협업 구조를 어떤 표기법으로 표현할 것인가?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설계서'에는 어떤 수준의 아키텍처가 담겨야 하는가? '변화관리 계획서'의 범위와 깊이는? — 이 질문들에 대한 업계 표준이 없기 때문에, 수행사마다 산출물의 형식과 수준이 천차만별이 됩니다.
이로 인해 사업 종료 시점에 구조적 갈등이 발생합니다. 발주자는 기존 ISP 산출물의 양과 정밀도를 기대하는데, 수행사가 제출한 AX 전환 산출물은 그 기대와 형식이 다릅니다. 무엇이 '잘된 AX 전환 산출물'인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없으니, 평가 자체가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재한 것 AX 전환 산출물 템플릿, 산출물별 필수 기재 항목 정의, 산출물 품질 기준, 산출물 작성 가이드
발주자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RFP를 작성하고, 수행사가 '무엇을 제안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제안서를 씁니다. 발주자의 모호한 요구사항은 수행사의 자의적 해석을 낳고, 수행사의 비표준적 산출물은 발주자의 검수를 불가능 하게 만듭니다. 이 순환이 반복되면서 AX 전환 사업은 양쪽 모두에게 위험한 사업이 됩니다.
이 문제는 발주자의 능력 부족도, 수행사의 역량 부족도 아닙니다. 양쪽 모두가 참조할 수 있는 '사업 수행 방법론'이라는 공통의 언어와 체계가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기존 정보화 사업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졌습니다. ISP 방법론, 산출물 표준, 대가 산정 기준, 기술평가 항목 — 이것들은 발주자와 수행사가 같은 기대 수준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였습니다.
AX 전환 사업에는 이 인프라가 아직 없습니다. 법령은 울타리를 쳤지만, 울타리 안에서 사업을 설계하고 수행하고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 인프라는 통째로 비어 있습니다. 이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법령 정비보다 시급하고, 기술 도입보다 근본적인 과제입니다.
마차를 아무리 정밀하게 분석해도 자동차의 설계도는 나오지 않듯이, 기존 ISP/ISMP의 수행 경험을 아무리 많이 축적해도 AX 전환의 수행 방법론이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사업에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고, 그 방법론은 발주자와 수행사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통의 체계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