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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남 Nov 18. 2024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어른

   장례식장에 들어설 때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고인과 인연은 없지만 상주를 아는 조문을 갈 때마다 난 생각했다. 특히 평소 큰 친분이 없는 상주를 대할 때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위로도 되지 못할 이상한 말을 하고 나오기도 했다. 나처럼 어떤 위로의 말을 할지 모르는 이들이 많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은 정형화된 인사가 생긴 걸까.

  하지만 이젠 그럴 때면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6인실 병실에 단둘이 입원했던 이름도 성도 기억나지 않는 분. 그분과 함께 입원하게 된 건 결혼을 한 이듬해 5월이었다.

   나는 갑작스레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응급 수술을 하게 됐다. 병명은 자궁 외 임신이었다. 수술하기 전날 밤 배가 이상하게 꼬인 듯이 아팠다. 이른 아침 찾은 동네 병원에서는 바로 큰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서를 써줬다. 응급 상황이라고 했다. ‘응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에 온몸이 긴장됐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입원했다. 하필 어버이날을 앞둔 때였다. 찾아뵙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느라 시부모님께도 입원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시어머님은 항암 치료도 잘 이겨내신 분이었다. 결혼 후 시아버님이 큰 수술을 하실 때에도 “괜찮어. 걱정 말어. 치료하면 되는데 뭔 걱정이여.” 말하던 의연한 분이었다. 내가 “어머님~”하고 부르면 언제나 “왜”가 아니라 “어야~ 우리 복덩이.”하고 답해주는 사람. 이번에도 분명 괜찮을 거라며 다정한 말로 날 토닥여 주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통화 중 어머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아프단 이야기에 병이 나셨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네가 내 마음속에 너무 깊이 들어왔는갑다.”라고 말씀하셨다. 눈물을 꾹 참고 “전 괜찮아요. 어머님.”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내뱉고 깨달았다. 우리 어머님도 매번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신 건 아니라는 걸. 괜찮다는 말. 사랑의 언어이자 무탈하길 바라는 바람이 담긴 주문이었다는 걸.




    남편이 병실을 비울 때, 나 혼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눈물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들어오는 물길을 막을 방법이 없는 밀물 상태의 바다처럼. 꺼이꺼이 눈물이 나와 한동안 멈출 도리가 없었다.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도 잘 몰랐던 잘려 나간 내 오른쪽 나팔관에 대한 상실감인지, 이전에도 계류유산을 몇 차례 했기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또 호르몬의 노예가 된 건지.. 도대체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 건지 나조차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또 썰물처럼 눈물이 다 빠져나가는 때가 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책도 읽고, 무언가를 먹었다. 자유로운 기분도 들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달콤하기도 했다.

   커튼을 쳤지만 가려지지 못했던 내 울음을 다 듣고 있던 유일한 사람은 함께 입원한 그 아주머니였다. 그분은 내 큰 울음에도 나를 달래거나 말을 걸지 않으셨다.

  

   그저 말없이 내가 화장실을 간 틈에 간이침대 위에 두유 하나, 바나나 하나, 따뜻한 음료 하나 두고 가시던 손길에서 내 눈물을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을 느꼈을 뿐이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살피신 것 같았다. 본인도 아픈 상황인데 보호자 없이 오신 그분은 소리 없이 날 많이 챙기셨다. 큰 위로였다.

​​

   병실에 누워 가만히 생각할수록 기쁨은 참 단순하고 슬픔이라는 건 참 복잡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쁠 때는 마음이 가볍다고 하고, 슬플 때는 마음이 무겁다고 하나 보다.


  가벼워서 날아가기 쉬운 기쁨은 잡고 싶어 하고, 날아가기 어려운 무거운 슬픔은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애쓰면서.

  슬픔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건 위로일 것이다.

  퇴원하는 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남편에게 부탁한 과일을 한쪽에 두고 병실을 나왔다. 나도 그분처럼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수술을 잘 마치시고 치유되길 바랄 뿐이었다.

   

   장례식장 앞에서 위로의 말을 고르지 못하던 지난날의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고르고 골라도 위로의 말을 고를 수 없을 때 침묵해도 된다고. 침묵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이젠 슬픔에 빠진 누군가에게 위로하고 싶은 내 마음을 함부로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가 견디고 있을 시간에 소리 없는 기도를 보낸다. 기도하는 손의 모습처럼 빈틈없이 마음을 모은다. 그 온기가 슬픔을 녹일 수 있길 바란다. 내가 본 어른의 위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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