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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를 남겨두는 마음

나의 육아동지 수니에게

by 봉남 Mar 19. 2025


육아동지 수니.

수니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에 위치한 영유아기지 놀이공간에 갔다가 처음 만났다.

서로 아이들의 나이가 같아 첫 만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여러 번 그곳을 갔지만, 수니와 만난 날 그곳에 간 건 너무나 잘한 일이었다.


수니를 만났으니까.


그날. 놀이시간이 끝나고 헤어질 때, 수니가 먼저 내 연락처를 물었다.

"원래 연락처 물어보는 스타일 아닌데요.."라는 말로 시작한 수니의 작업ㅋㅋ

둘 다 같은 동네에서 가정보육 중이니 종종 만나면 좋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했다.


얼마 뒤, 수니에게서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함께 또 보자는 연락이 왔다. 두 번째 만남을 시작으로 우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에 만나 놀다가 아이들 낮잠 시간에 헤어지고, 오후에 다시 만나는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수니와는 직업도 같아 만나면 육아 외에도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나이가 들어 만나도

서로 모르고 산 긴 세월을 가볍게 뛰어넘고 성큼 내 마음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수니는 나에게 그런 사람.

만날수록 감탄할 점이 많은 사람.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연스레 흐르는 배려에서 어떤 삶을 차곡차곡 쌓아왔을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


한 여름밤.

수니와 난 아이들이 잠든 후 만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달빛 아래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울다가 웃으며 나눈 이야기들.


수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동안

듣는 마음은 보는 마음이란 걸 새삼 느꼈다.


수니의 마음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수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시간이 나에게 말했다.


'내 삶의 굴곡들이 누군가와 만나는 통로였구나.'


서로의 통로를 타고 우리는 더 깊은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을 만나다가 우리 아이가 아파 입원을 하게 되면서 한동안 수니를 만나지 못했다.


만나지 못하는 시간마저도 나를 위해 김밥과 직접 만든 빵을 두고 가는 마음으로 수니의 배려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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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나를 만들어도 기도를 더하는 마음.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끼니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영양식 메뉴 김밥.

그중에서도 최화정의 유튜브에서 소개한 오이김밥이 먹고 싶다던 내 말을 기억한 오이김밥.

반찬을 대신해 찍어먹을 수니표 양념장.

아파서 입맛이 뚝 끊긴 우리 아이를 위해 직접 만든 빵.

혹여나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겨울이 먹이려고 만들면서 더 만들어 본 거예요."라는 말.


재료만큼이나 음식을 주며 전하는 말까지 내 마음을 생각해 고르고 골랐을 수니의 성정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음식이 든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배려가 김밥 밥알처럼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느꼈다.


우리의 만남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




행운.

수니와 '행운'이란 단어가 연결되는 또다른 지점이 있다.


동네 공원을 산책하던 어떤 오후.

수니가 네잎클로버를 찾고 말했다.


"여기 네잎클로버가 많아요. 또 찾았다! 내가 찾은 행운 샘한테 나눠줄게요."

내게 네잎클로버를 건넨 후,

수니는 옆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풀을 어루만지는 수니딸 겨울에게 말했다.


"겨울아. 우리는 찾았으니까, 이제 그만 찾고 여기 남겨두고 가자."


수니의 손과 내 손에 행운을 하나씩 들고, 다시 길을 걷는 동안 내 마음은 수니의 말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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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릇이 큰 수니는 매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오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했다.

습자지처럼 주변의 영향을 쉽게 받는 나는 새로운 곳을 가기 전, 나쁜 사람을 피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는 했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서로의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뒤로 아이와 단둘이 수니와 함께 가던 공원을 산책할 때.


수니가 네잎클로버를 찾은 자리에 앉아보았다.

그곳엔 정말 네잎클로버가 여럿 보였다.

예전엔 네잎클로버로만 보이던 풀이 수니를 만난 뒤로는 누군가가 다음에 머물 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간 마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오기 전, 수니 같은 사람이 지나간 자리일 수도 있지 않은가.


상상 속에 누군가를 떠올리면

나를 위해 네잎클로버를 남겨두고 간 예쁜 마음을 선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수니 덕이었다.

네잎클로버를 볼 때마다, 단순히 행운을 발견한 것 이상의 기쁨을 얻을 수 있던 것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수니처럼 내가 찾은 네잎클로버를 우리 동네 디저트 카페 사장님에게 전했다.


뒤늦게 보게 된 사장님의 SNS에 적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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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가게 앞을 지날 때, 나를 본 사장님은 네잎클로버를 준 게 너무 고마워 지나가길 기다렸다며 새로 나온 쿠키를 우리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가게 한쪽엔 내가 전한 네잎클로버도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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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를 주고 간 나를 기다리는 동안 사장님이 품고 있던 행복이 다시 내게 온 순간이었다.




수니는 알고 있었구나.

행운을 주고 나면 행복이 심어진다는 걸.


수니의 마음밭엔 행복이 가득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수니가 내게 전해준 행복의 씨앗은 내 마음밭에서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관계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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