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우리 가족은 여러 방면에서 시작된 버린 변화의 흐름 속에 저항할 힘도 없이 떠밀러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듣기엔 좀 웃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린 잠깐의 휴식이 필요했다.
다가오는 변화를 맞이하고 버티기 위한 휴식을. 내가 휴직에 들어설 때쯤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바빠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가장 가까운 날짜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여행에 대해선 남편과 나 사이에서 큰 의미를 갖는 연간행사에 가까워서 9년간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일정이기도 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변화하는 상황들과 환경에 ‘1년에 한 번 여행’ 만큼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행하고,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번에 좀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제주도. 아들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첫 비행이자, 나의 짧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 내가 어렸을 적 어색하게 동생과 사진을 찍었던 그 장소에서 아들이 똑같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뭔가 말로 허용하기 어려운 감성적이면서도, 행복한 울렁거림. 여행은 호캉스에 가까운 여행이라 얘기하자면 마냥 즐거웠고, 행복했던 것 밖에 없었다.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무리를 해서 다녀온 여행이긴 하지만 이때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혼란스러운 현재에 함께한 여행을 다시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이번 여행으로 처음 비행기에 타게 되는 아들은 제주도에 가기 몇 달 전부터 어린이집에 “나 비행기 타!” 하고서 재잘거렸다고 한다. 그 귀여운 기대감은 비행기를 타고나서 얼마만큼 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비행하는 한 시간. 우리에겐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소란스럽게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괜히 했구나 싶을 정도로 아들은 한 번도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약간의 관광과, 주된 휴식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에 취해 현실로 다시 복귀해야 함을 부정하고 싶어 몸부림치기도 했다.
가끔 인생이 우리를 너무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음 말한 것처럼 이맘때쯤 남편의 근무지 이동과 진급(급여차이는 얼마 없는..)으로 바빠지면서 집안일과 육아에 조금 멀어져야 했고, 그 몫은 당연 나의 것이 되어버렸다.
즐거운 다음에도 계속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가득 찰 수는 없는 걸까. 조금 힘이 빠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면 행복한 일이 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한다. 그 믿음이 인디언식 기우제에 가깝긴 하지만: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