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상도덕.
상업 활동 시 지켜야 하는, 혹은 상인이 지켜야 할 도덕. 예컨대 가게가 있는데 바로 옆에 동종 가게를 세우는 행위.
상도덕이 없다. 정육점 옆에 정육점이라니. 경력도 적고 기술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초보 사장에겐 너무 큰 시련이 닥쳤다. '나만 잘하면 돼.',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하기엔 환경이 가혹했고 자본주의 사회의 자영업자는 사회복지와 같이 당사자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려 주지 않는구나.
사실 옆 가게는 전전세를 얻어 들어온 거였고 전전세를 준 사람은 엄마가 언니, 언니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정육 기계가 들어서면서 그제야 엄마가 "혹시 옆에 정육점이 들어오는 거예요?"라고 물으니 "세가 안 나가는데 어떡하노. 네가 책임져줄 거가?"란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할많하않.
엄마가 먼저 옆 가게 사장님을 찾아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잘해봅시다. 대신 우리 장난치면서 장사하지 맙시다."라고 으름장을 놓고 왔다고 한다.
복지관을 그만둘 때만 해도 오래오래 해야지, 적어도 2~3년은 해야지라는 다짐이었는데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이렇게 큰 난관이 생기다니.
진퇴양난. 손 놓고만 있을 수 없었다. 매장을 깨끗이 쓸고, 기계들을 더욱 닦고, 고기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손질했다. 아빠 인맥, 엄마 인맥, 내 인맥 할 거 없이 총동원해 거래처도 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 가게가 들어오고 매출이 20~30%가량 줄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어찌어찌 비비며 내 자존심의 크기만큼 장사하는 기간도 늘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며 정육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 근처에 정육점이 하나 더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새로 들어온다는 정육점 사장은 경력도 많고 기술도 장난 아닌, 정육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아. 그만하라는 하나님의 계시구나.
하나뿐인 직원, 엄마와 우리 가게의 존폐를 걸고 중대 회의를 열었다. 고? 스톱? 결론은 스톱이었다. 스톱을 결정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자기 객관화가 200% 되어 있었다는 것, '우리 가게는 경쟁력이 없다.'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단이 있었기에 결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고 새로 들어온다는 정육 사장님을 찾아가 "거기보다 여기가 목(자리)이 더 좋지 않습니까. 만약 저희가 하던 여기에서 한다면 비켜주겠습니다."라고 딜을 했고 사장님도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게를 비워주는 기간, 남아 있는 물건 처리, 권리금 등 속전속결로 조율해 단 2주 만에 가게를 그 사장님께 넘기게 되었다.
가게 마지막 날, 마무리하고 셔터를 내리고 있는데 뒤에서 엄마가 나지막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도 그만두게 하고 장사해 보자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는 말 대신 "6개월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여행 다니면서 쉴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그만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커 그냥 쉬고만 싶었다.
고작 1년밖에 하지 못해 자존심도 상하고 삐까뻔쩍한 외제차 문짝 하나도 제대로 못 산 것 같아 시무룩했지만 세상살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그것보다 더 속상했던 건 "왜 벌써 그만뒀어요?"라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 없는 관심. "망하기 전에 그만뒀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진심 6개월 동안 매일 같이 늦잠을 잤고, 부지런히 영화도 보고, 진짜 버킷리스트였던 해외봉사도 갔다 왔다.
누구보다 알차게 백수 인생을 즐겼고, 내가 계획했던 딱 6개월이 될 무렵 복지관에 입사 공고가 떴다.
아. 다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계시구나.
예전에 다니던 회사를 다시 들어간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과장 없이 얘기하자면 진심 입사 원서는 책 한 권 분량으로 제출했고 면접도 관장 할아버지가 와도 떨리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
면접 날. 관장 할아버지 대신 나를 아주 잘 아는 과장님, 국장님, 면접관님들이 무표정으로 앉아서 나를 멀뚱히 주시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와 동시에 떨리는 목소리를 다듬을 새도 없이 "왜 다시 들어오려고 합니까? 만만해서 다시 지원한 거 아닙니까?"라는 첫 질문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멘탈이 흔들렸다.
보통 면접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이 의례 "긴장해서 무슨 말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라고 하는데 난 이상하게도 말 한마디, 한마디, 무거웠던 공기, 면접관들의 표정 하나까지 생생히 기억나 더욱 부끄럽고 괴로웠다.
일부러 더 긴장 안 한 척,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오히려 거만하게 보이진 않았을까, 자신감 넘치게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지만 한 번 그만둔 놈이 두 번 못 그만두겠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면접장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얘기해 주면 좀 좋아. 하루라는 시간 동안 노심초사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결과는................................. '합격!'.
그래도 예전에 근무했을 때 좋게 봐주셨구나. 정말 정말 감사했다.
이 복지관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난 1년 6개월의 탕자 생활을 마치고 재입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