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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2편

봉주르, 한량 사회복지사!

by 브라질의태양


골목으로 출근한지 일주일째.

컨테이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골목 주민들도 모른다.


푸른통영21의 윤국장님은 사업 전체를 기획하고 통영시와 중대한 일들을 조율해 나갔고 미술감독님은 외적인 변화를 위해 어떻게 꾸밀지 구상하고 여러 작가님들과 작업 방향을 논의했다.

함께 일하는 두 분은 늘 바빠 보이네.

거 참, 함께 일한다는 표현이 맞나.

그래서 나는 뭐 함?

남아도는 시간 속에 나를 어찌해야 할까.

복지관에서는 과감하게 매일 반나절을 골목에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나 또한 호기롭게 "하겠습니다!" 하고 왔는데. 골목 청소라도 해야 되나.

맞다. 골목 청소라도 해야 했다. 어슬렁거리며 쓰레기라도 줍고 골목 주민들과 인사하는 게 내 일의 전부였다.


그렇게 한량 사회복지사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무려 프랑스에서 온 조각 작가 세 분이 등장했다.

아는 말이 '봉주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내 발음에 작가님들은 웃어 보였고 나의 봉주르는 부끄러움을 한 아름 안고 골목 구석 어딘가에 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 정도 스케일의 사업이라고? 나 외국 작가들이랑 일하는 사회복지사야. 좀 멋지잖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프랑스 작가들은 부지런히 조각을 했고, 용접을 했고, 와인을 마셨다.

난 번역기를 돌려 시답잖은 인사를 하루에 두어 번 날렸고 그런 내가 귀여운 듯 매번 '따봉'으로 답했다.


수일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3m에 달하는 큰 물고기 조각 작품이 골목 초입에 섰다.
물고기 작품은 '여기가 골목 입구입니다.'를 알리는 안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중섭 작가가 통영에 있을 때 만든 '아이들과 물고기'에서 모티브 했으며 골목에 식당이 많아 물고기 비늘은 밥뚜껑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작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어마 무시한 스케일에 압도되었고 이 일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몇 작품이 더 만들어졌고 적당한 장소에 각자 자리를 잡아 나갔다.


그렇게 골목에도 봄기운 흠씬 풍기며 싱그럽고 근사한 옷으로 한 겹 한 겹 갈아입어 나갈 때,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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