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안 골목 프리마켓은 첫 회임에도 불구하고 셀러 30팀 이상이 모집되었고 프리마켓과 더불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고등학생 밴드 등이 음악 공연을 하며 볼거리, 즐길 거리도 더했다.
통영뿐만 아니라 울산, 마산 등에서도 셀러로 참여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더러 있었고 평균 40~50팀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골목 주민들은 본인 가게 앞에 앉은 셀러들에게 물건은 좀 팔았는지, 덥지는 않은지, 화장실도 사용하라며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고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시원한 음료를 주며 격려했다.
주민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내어주며 셀러들, 방문객들과 더불어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이러한 주민들이 있었기에 강구안 골목 프리마켓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롱런할 수 있었다. 이게 사람살이지!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은 더욱 의기투합해 반상회도 활발하게 운영되었고 골목의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제 집 앞은 자기가 깨끗이'에서 '청소하는 김에 옆집까지'로, 무거운 짐을 들어야 될 때는 젊은 남자들이, 힘을 보태지 못하시는 주민분들은 박카스를 사서 "욕보재." 하시며 마음을 보탰다.
지난 1년을 돌아보았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골목 청소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간판을 보며 화도 같이 내고, 다른 지역에 공부도 하러 가고, 눈으로 드러나는 일은 적었으나 1년 동안 주민과 함께 희로애락 했더라고.
지역조직가로써 밥 먹을 때도 골목에서, 옷 수선할 때도 골목에서, 심지어 이발할 때, 목욕할 때도 골목에 있는 가게를 방문해 '이모', '삼촌' 하며 관계를 맺었다. 그랬었기에 오늘의 프리마켓, 오늘의 골목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난 1년, 헛되지 않았네.
톱니바퀴 맞물린 듯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갈 때, 골목에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젠트리피케이션. 난생처음 듣는 이 어려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그래, 이런 거 뉴스에서 본 것 같애. 근데 이런 일이 우리 골목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 이런 현상은 법적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난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열심히 일한 나로 하여금 원래 있던 주민들이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다. 누구를 위해 일한 거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생각하니 더욱 스트레스를 받았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프리마켓에 방문객은 많은데 가게는 텅텅 비고 주민들은 아무도 안 보이는 꿈, 밥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사장님이 진수성찬을 차려주던 꿈.
막연한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골목에 가기가 두려웠고 주민 여럿이 모여 있으면 괜히 둘러 가게 되었다. 잔뜩 주눅 들어 골목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상핸아!" 하고 웃으며 이리 와보라고 손짓하는 주민.
친구 엄마였다. "호빵 하나 묵고 가라.", 평소와 다르게 좀 어색하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하고 받아 들었다.
"상핸아. 니 잘못이 아이다."
가릴 틈도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친구 엄마는 다시 한번 "상핸아. 니 마음 안다. 니 잘못이 아이다." 하시곤 어깨를 툭툭 쳤다. 홍수가 난 눈을 소매로 가리고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입을 꾹 다문 채 어깨를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었다.
아들 친구한테 호빵 하나 주려고 부르셨을 텐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라셨을 법도 한데, 평소와 다르게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위로의 말을 날리는 친구 엄마. 괜히 친구 엄마가 아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고맙습니다. 어머이." 하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호빵을 꼭 쥔 채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 순 없으나 10여 년을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받은 위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위로의 말'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다행히 친구 엄마는 집주인과 이야기가 잘되어 골목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친구 엄마처럼 이야기가 잘 된 주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들도 있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고, 다들 웃으며 오히려 내게 힘을 주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