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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사장이 된 사회복지사 2편

온실 속 화초

by 브라질의태양



최사장님은 약 3주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내게 딱 정육점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이런 거까지 가르쳐준다고?'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알려주신 것 같다. 샤라웃 투 최사장님!

하지만 최사장님의 가르침에 비해 내 몸뚱이는-습득력이라는 게 없는 사람도 있구나 할 정도로-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분홍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엔 칼을 들고, 세상 어설픈 자세로 고기를 썬다.

한심한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던 나는 고기가 한 근에 600g인 줄도 몰랐고, 국거리 고기와 찌개거리 고기도 구분할 줄 몰랐다. 기초 중에 기초인 트레이(고기 담는 일회용기) 랩 싸는 것조차 엉성했다.

하. 이런 내가 정육점 사장이라니.


믿었던 엄마마저 "와이리 어렵노. 못하긋다." 하는 순간 머리에 번개가 번쩍했다. 그래 엄마도 이제 연세가 있으니까 기계를 다루는 것도 어려워했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쳐했다. 나도 은연중에 엄마한테 기대었던 것 같다.

각성하자! 그 이후로 "사장은 나다."라는 생각과 함께 책임감이 두 어깨에 올라탔다. 쉬는 시간도 없이 고기를 썰고 기계도 손보고, 최사장님께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묻고 또 물었다.

기술도 없고 요령도 없던 난 매일 칼에 베이고 기계에도 베이며 손에 상처를 달고 살았다.


한 날은 생닭을 닭볶음용으로 잘게 잘라주는데 손가락 마디 있는 가장자리를 칼로 사정없이 내려친 적이 있다. *좆됐다고 생각했다. 직감적으로 큰 부상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손님 앞에서 초보 사장인걸 들키기 싫어 옆 손가락으로 꼭 잡고 마지막 조각까지 봉지에 담아 준 다음 돌아서서 주저앉은 적도 있다.

명절이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하루에 3~4시간 잠을 자며 고기를 준비하고 양념도 새롭게 담그고, 선물용 포장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때까지 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기에 이런 고생이 너무 생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가 잘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또, 감사했다.


감사는 곧 거만으로 이어졌다. 장사가 잘되고 돈을 좀 버니 책임감이 앉아 있던 어깨에 거만함으로 선수교체 되어 있었다.

배달을 나갈 때면 눈에 들어오는 건 곧, 외제차였다. 허세가 가득해 좋은 차, 좋은 시계, 고가의 노트북과 스피커 등 플렉스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솔직히 그즈음 정육점 일이 재미있지도, 썩 행복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손님 올까 봐 상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국에 밥을 말아먹을 때가 부지기수였고 손님이 와도 맞이하기가 두려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으려니 내 사정이 영 애처로웠다.

그에 대한 보상은 소비라는 등식이 성립해 플렉스리스트는 버킷리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 보잘것없고 나약한 인간이여. 정신 차리자.


장사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옆 가게에 정육점이 개업식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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