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맡기다.
알고 있나요, 당신은
운명적인 말로
나를 가두었습니다.
벗어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난 지금도
나의 의지로 갇혀있습니다.
정말로 운명이라 신뢰했던
당신은, 나의 선명한 미래였기에
당신 없는 미래는 상상한 적 없기에
이 결핍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겁네요.
내 그릇은 당신을 담기에는
한참 비좁았나 봅니다.
품에 안으려 허우적대고
자꾸만 새어나가는 당신을
사랑이란 명목으로
열렬히 잡아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당신을 옭아맸기에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비칠 날이 또 올까요.
여전히 기적을 바라며
오늘은 일찍 잠에 들려 합니다.
나도 하루쯤은
당신을 떠올리지 않고
편히 잠들고 싶네요.
당신은 오늘 하루만
나를 떠올리며 잠들어 주세요.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나는
당신의 무의식을 걷고 있을 테니
괜찮다면
멀리서라도 마주해요 우리.
인연이 지독하게 얽혀있다면
한 번쯤은
정말 한 번쯤은 마주치겠죠.
당신 덕에
운명이란 걸 믿게 되었으니,
오늘부터 나의 운명에
우리를 맡기려 합니다.
좋은 타이밍에
마치 우연처럼 마주칩시다.
가장 무르익을 때
내 계획에서 당신이 사라지고,
내 미래에서 당신이 거둬지고
주저 없이 등 돌린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
주저앉아 나지막이 설움을 참습니다.
이별이 서툴러 미안합니다.
한동안은
낡은 책상 서랍 구석에
당신을 고이 보관하렵니다.
나무 향이 진하게 배일 때쯤
다시 꺼내어 추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온기가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뜨거운 숨을 게워내며,
이러한 결말도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아직 당신을
떠나보내는 중입니다.
- 파인 글
추신
오늘은 동지네요.
빛은 가장 짧고, 어둠이 가장 긴.
그래서 나에겐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만
느껴질 것 같은 하루이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오늘도 긴 긴 밤을 버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