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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씨 Nov 13. 2024

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선명히 울린, 우리의 침묵

너는 나에게 말했다. 무언가를 놓칠까 봐 두렵다고. 처음에는 너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대화는 분명 나눴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말인지, 아니면 너 자신을 향한 고백인지 모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알게 되었다. 너의 말속에는 내가 아니라도 되는, 오롯이 너만의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있던 것이었다.


어느 날 너는 내게 물었다.

“넌 가장 먼저 사라질 때가 언제였어?”

그 질문은 내 기억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순간들을 끌어올렸다. 사라졌던 감정들, 잃어버렸던 날들,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된 목소리들. 나는 대답 대신 너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는 그 순간이 두렵다고 했다. 모든 것이 흐려져 결국 남는 것은 희미한 잔상뿐인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너의 두려움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 그들이 남기고 간 온기, 그리고 우리 자신마저도. 우리는 모두 그것을 붙들고자 애쓰지만, 잡아내기엔 너무나 부족하단 것을 안다.


나는 네가 이야기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네가 잊을까 봐 두려워했던, 웃음소리와 귓가를 스치는 바람 같은 음성들. 그것은 단지 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라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거기엔 감정의 떨림, 숨겨진 마음의 결, 그리고 침묵 속에 스며든 진심 같은 것들이 있었다. 너는 그것을 지키고 싶어 했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목소리를 붙잡을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란 존재할까. 녹음된 음성이나 사진, 글 같은 흔적들은 과거를 되살리는 도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온기를 간직하지 못한 채 단지 흔적으로만 남는다. 너의 두려움은 바로 그 온기의 상실에 있었다. 너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원했다. 그 목소리가, 그 진심이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랐다.


나는 네게 말했다.

“기억이란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 우리가 떠올리는 목소리는 흐려지고 달라지겠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지 않아? “

하지만 너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철학적인 위로가 아닌 진짜 답을 원했다. 네가 원한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잊히지 않는 확신이었다.


네가 떠난 뒤, 나는 내가 잃어버린 목소리들을 떠올렸다. 더는 전화를 걸 수 없는 이름들, 너무 멀리 가버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음성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목소리들은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꿈속에서, 낯선 바람 속에서, 혹은 한 곡의 노래 속에서. 그것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내가 붙잡으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왔다.


너는 내게 두려움이라는 질문을 남겼고, 그것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잃어가는 것일까. 삶의 가장 깊은 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가슴속 어딘가에 묻어둔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잔향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울려 퍼질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나는 가끔 네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네 목소리와 웃음소리, 네가 내게 보여주던 눈빛. 그것들은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들을 품고 있다. 너는 기억의 진심을 지키고 싶어 했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네가 남긴 목소리는 이제 내게 그 이상의 무엇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숨 쉬며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너는 나에게 목소리를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가 품고 있던 네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오늘도 나는 그 기억 속에서 네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에 담긴 너의 마음을, 진심을 기억한다. 그것이 너와 내가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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