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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신호, 호흡하는 신호

디지털 문명을 경험하는 두 세대의 감각

by 새틔

아이가 태블릿을 켜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손가락이 화면을 스치는 순간, 그 작은 동작에 반응하여 기계가 깨어나는 광경은 마치 작은 마법과도 같다. 내게는 여전히 신비로운 이 과정이 아이에게는 숨쉬기처럼 자연스럽다. 화면을 넘기고, 앱을 실행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그 모든 움직임에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 언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망설임이나 의식적인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 봐, 이 영상 재밌어."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화면 속에서는 누군가가 색색의 점토를 반죽하고 있다. 그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의 눈빛에는 순수한 몰입의 기쁨이 담겨 있다. 나에게 디지털 기기는 여전히 '기계'이지만, 아이에게는 그저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처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그 설렘과 낯섦을 아이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태블릿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검색을 시작한다. 디스플레이 키보드 터치 소리가 빠르게 이어지고 곧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는, 질문이 생기면 즉시 답을 찾는 이 세대의 방식은 백과사전을 펼치거나 궁금증을 안고 살아야 했던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우리 두 세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강을 만들어낸다.

나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업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부터 최신 앱까지 능숙하게 다루지만, 이 모든 것을 '배웠다'는 사실이 아이와의 차이점이다. 디지털 세계의 문법과 어휘를 하나씩 습득한 내게 비해 아이에게 이것은 모국어와 같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저녁 먹자."


아이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태블릿을 내려놓는다. 디지털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에도 시대의 차이가 담겨 있다. 소금 통을 건네며 아이의 손을 잠시 바라보는 태블릿 화면을 쓸던 그 작은 손가락이 이제는 숟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자유롭게 오가는 세대를 본다.

경험과 감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이는 내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는 아이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저녁을 먹은 후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나는 핸드폰을, 아이는 태블릿을 다시 만지작 거린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상 많이 달라졌다."

"아빠는 어릴 때 태블릿 없었어?"

"아빠 때는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없었어. 두꺼운 모니터를 처음 봤을 때가 정말 신기했지."


아이의 질문이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생일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신 586 컴퓨터를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책상 위에 놓인 크고 무거운 모니터, 투박한 키보드, 그리고 본체에서 들리는 미세한 팬 소리까지. 전원 버튼을 누르고 부팅되는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마우스로 클릭하는 게 아니라, 키보드로 명령어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했어. DIR, CD, COPY... 이런 단어들을 외워야 했지."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의아해졌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썹을 모은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디르? 시디? 그게 뭐야?"

"DIR은 지금의 폴더 안에 뭐가 있는지 보여주는 명령어고, CD는 폴더를 이동할 때 쓰는 거였어."


아이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화면을 터치하거나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세계에서 자란 아이에게 텍스트 명령어의 개념은 마치 외계어처럼 들릴 것이다.


"그럼 유튜브는 어떻게 봤어?"

"유튜브는 없었어. 인터넷도 초창기라 전화선에 연결된 모뎀을 통해 접속했지. 연결될 때마다 '삐-삐-삐,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났어."


통화 신호음을 기계가 내는 것처럼 손으로 모뎀 소리를 흉내 내자 아이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했던 그 소리가 아이에게는 우스꽝스러운 과거의 유물로만 들리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디지털 세계의 시작과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마주한 완성된 디지털 환경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경험의 강이 흐르고 있다.


"그때는 PC통신이라고 해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같은 서비스를 이용했어. 사진 한 장 내려받는 데 몇 분씩 걸렸고, PC통신을 하는 동안은 유선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지.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아이는 여전히 그것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과거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첫 이메일을 보냈을 때의 설렘, 채팅방에서 처음으로 낯선 이와 대화했을 때의 신비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디지털 세계가 열리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은 흑백 TV만 보다가 처음으로 컬러 화면을 본 사람의 놀라움처럼 요즘 아이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에게 설명조차 불가능한 감정이다.

주말 오후,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아이와 함께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다. 평소라면 업무 메일을 확인하거나 뉴스를 읽었을 시간이지만,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작은 캐릭터를 움직이는 아이의 손가락은 마치 피아니스트의 그것처럼 정확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가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누비고 있었다.


"아빠 차례야. 여기 이렇게 하면 돼."


아이가 건넨 태블릿을 받아 들고 게임을 시작했지만, 내 손가락은 어색하게 움직였다. 의도한 방향과 다르게 달려가는 캐릭터를 보며 아이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아빠는 왜 그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 살살 움직이면 된다니까!"


아이의 시범을 유심히 관찰하며 따라 하지만, 내 손가락은 여전히 어설픈 움직임을 보였다. 그 순간 깨달은 것은 우리의 차이가 단순한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감각의 차이라는 점이었다. 아이에게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위였다.


"괜찮아, 아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내 서툰 실력에 건네는 아이의 위로가 묘하게 익숙했다. 불과 얼마 전,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주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우리의 역할이 은연중에 뒤바뀌어 있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 순간들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와, 아빠 이번엔 잘했다! 한 번 더 해봐."


아이의 진심 어린 응원에 용기를 얻어 다시 도전하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어떤 위계도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이 흘렀다.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고 요령을 알려주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티 없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무언가를 능숙하게 해내는 자신감,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보람이 아이의 눈빛에서 반짝였다.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 사이의 이 상호학습은 마치 언어 교환 학습과도 같았다. 서로에게 자신의 세계를 소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이는 내게 새로운 기능을 알려주고, 나는 아이에게 안전한 사용법을 설명하는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이 교환의 시간들이 쌓여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아빠, 이거 봐."


어느 날 저녁, 아이가 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PENUP 앱을 열어 자신이 그린 캐릭터를 보여주는 아이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잘 그렸다고 칭찬 했더니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종이에 그린 것도 보여주었다.

앱드로잉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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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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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드로잉1.png
페이퍼 드로잉

아이의 창작물을 통해 디지털 세계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닌 창조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았다. 자신만의 상상 세계를 구현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차 디지털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 이제는 아이와의 연결을 강화하는 새로운 장이 되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함께 하고,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 때로는 아이의 창작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 아이의 디지털 세계를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경험한 기술의 진화 방식은 달라도 그 안에서 찾는 가치는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신비롭고 낯설었던 첫 경험의 설렘을 기억하고, 아이는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계에서 창조의 기쁨을 찾고 있었다.

아이가 디지털 세계에 몰입하는 모습이 우려스러웠지만, 함께 참여하면서 그것이 소통의 새로운 형태임을 발견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였다. 우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그 간극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같은 바다에 이른 우리가 손을 맞잡고 물결 위에 함께 새기는 디지털 시대의 발자국은, 우리가 나눈 모든 기억과 호흡의 순간들만큼이나 깊고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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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