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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귀천이 있다? 없다?

호주와 한국의 노동에 대한 다른 시선

by NINEBELL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이들 꺼내는 주제 중의 하나가 ‘호주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라는 것이다.


과연 그 말은 진실일까? 진실이라면 ‘왜’ 그럴까? 호주 사람들이 특별히 관대해서?


나는 호주에서의 시간이 좀 쌓여가면서 나름의 결론을 가지게 됐는데, 이 주제에 관한 나의 입장은,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점점 노동과 관련된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어쩌면 가장 대척점에 서있다고 볼 수도 있는 호주의 노동에 대한 태도, 그중 직업의 귀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선 ‘진실이 아니다’ 즉, '귀천을 따진다'라는 생각은 불편한 진실 같은 이야기인데, 이는 문화적인 배경에서 오는 것 같다. 호주는 지리적으로 아시아권에 속해있지만 사실 유럽의 문화를 가지고 사는 백인들이 주류인 나라다.

미국이나 영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문화는 상류층 일수록 더 두드러지고, 그들의 뿌리 깊게 박힌,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상이 하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우리에게는 그냥 듣기 좋은 말 정도지만 서양에선 여전히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상이고, 실제로 유럽 사람들에게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최후의 보루로 믿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하려는 말은, 그 주류의 백인들이 전부 그렇게 숭고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척‘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숭고하진 못하지만 최소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류층인 것을 내보이는 방법을 남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속으로는 무시하더라도 최소한 안 그런 ’척‘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척‘은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내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믿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 또한 따르게 만든다.

나는 이런 태도가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라는 건 지나친 유토피아적 상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귀천을 따지는 태도를 창피한 행동이라고 인식만 하고 있어도, 실제로 그런 사람도 겉으로는 티를 못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의 직업을 깔보는 시선이 실제로도 적은 거 같긴 하지만, 만약 그게 모두 진실이라면 호주도 특정직업에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이 없어야 하고, 상류층들도 일명 비선호직업군에도 많아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양의 상류층이 한국의 그것보다 단단한 계층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분명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런 사상이 보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속으로는 귀천을 따지는 사람도 적어도 겉으로 티는 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진실인 경우, 즉,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는 쪽인데 너무 이상적인 말 같이 들리지만 분명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이 부분은 정책적인 면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호주에선 어느 직업이든 어느 정도의 노력만 하면 충분히 먹고사는 것과 최소한의 여가는 가능하다는데서 시작한다. (물론 코로나 시기가 지나면서 모두가 조금씩 힘들어진 건 넘어가도록 한다.)


우리가 직업의 귀천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예시가 하나 있다.
내가 흔히 남들이 무시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부모가 아이를 옆에 두고 ‘너 열심히 공부 안 하면 커서 저렇게 산다’라고 하는 이야기. 이를 직접 겪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적어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그 부모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지만 수입이 턱없이 부족해서, 힘든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반대로 내가 똥 치우는 일을 하고 있어도 연봉이 몇억이 된다거나, 그 부모보다 수입이 더 크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무시받는 직업을 호주에서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무도 그들을 불쌍하다거나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들 그만큼의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지간한 사무직보다 더 큰 수익을 받고 일한다. 안전이 보장되는 환경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위험에 좀 더 노출되는 직업은 있지만, 어느 직업이든 손가락이 잘리거나 다쳐서 일을 그만두는 게 당연한 곳은 없다. 이건 노동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정책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호주의 큰 스시 프랜차이즈가 임금체불로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게 됐는데, 이 건도 한국이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고로 한국의 체불임금은 매년 최고치가 경신되고 있고, 2024년에는 상반기에만 1조가 넘는 돈이 지급이 안 됐다고 하는데, 그것도 집계가 가능한 직업만 포함됐을 것이다. (한국이 이제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다들 넉넉히 벌고 사는 것 같지만 2022년 기준 명목상 중위소득은 월 300만 원이 안된다.)

정책적으로 노동에 대한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어느 직업이든 ’ 동정심’을 가질 이유가 없고, 결과적으로 무시할 이유가 없어진다.



호주에 있다 보면 확실히 직업에서 귀천을 느끼는 경우가 적다고 느끼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부분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해서 모두가 귀천을 따진다거나 혹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다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모든 직업은 결국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생긴 건데 귀천을 따진다는 건 한편으론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이번 글을 써봤다.
단순히 ‘우리의 마인드를 고쳐먹어야지’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힘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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