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했는데
올해 여름, 나는 정말 운이 좋게 졸업 후 한 달이 안 돼서 취업을 했다.
남들이 몇 년간 준비해서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의 사무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기업 자회사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F&B회사의 서비스직이었다.
중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알고, 해외대학을 졸업했다는 점을 높이 샀던 걸까 1,2차 면접을 일주일 만에 끝내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나와달라는 연락에 나는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얼떨결에 취업을 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 그래도 불경기에 이렇게 초고속 취업이면 엉감생신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렇게 직장인이 되었다.
근무지는 인천공항 면세점이었지만 교육과 실무경험을 위해 서울에 있는 매장에 파견근무를 나가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입사가 늦어 다른 교육을 하나도 듣지 못한 나는 뒤늦게 혼자 공부해서라도 따라잡으려 노력했다.
근무지가 집과 멀다는 것과 스케줄근무라는 점이 단점이었지만, 공항 근처에 기숙사를 구해주었고, 공휴일과 주말대로 쉬는 날을 정해주어 일하는 날은 월별로 따지면 다른 사무직과 같았다. 하지만 새벽근무와 야간근무라는 게 제일 힘들었다.
또한, 스케줄을 미리미리 알려주지 않고 그 전날 밤에 알려주는 일도 있어 하루를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한국에 귀국한 후, 나의 가장 큰 목표는 전세금 마련이었다. 서울에 집은 꿈도 꾸지 못했고 그냥 내 고향 근처에 작은 빌라나 구옥아파트 전세금정도는 마련하고 싶었다. 남자친구와 결혼 생각까지 있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모아두면 꽤 큰 금액이 모일 것이라 생각했다. 월세걱정도 안 해도 되고 유니폼도 주니, 나는 그냥 일만 하면 됐다. 그럼 된 거였는데
나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돼 퇴사를 하고 말았다.
무책임한 MZ소리를 들을 게 뻔했지만,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나는 과호흡이 왔다. 숨이 헐떡거리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그런 호흡은 생에 처음으로 느껴봤다. 입맛도 영 없어 라면 한 개는 고사하고 반개도 먹지 못했고, 뭐라도 하나 먹으면 구역질이 나 다 먹지도 못했다. 무슨 임신 입덧처럼 음식냄새도 역해졌다. 그래도 아직 적응하는 기간이려니 생각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서 또 과호흡이 왔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 문 여는 시간에 맞춰갔다. 처음 가본 정신과는 무서운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아로마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그냥 평범한 내과 같았다. 태블릿으로 접수를 하라는 간호사도 말투가 사무적이면서도 상냥했다. 나는 그렇게 휴지를 붙잡고 엉엉 울면서 진료를 기다렸다.
요즘은 몇 달은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다는데 난 운 좋게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나에게 뭐가 힘드냐고 물었고 나는 내 이야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어딘가 느껴지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나는 항상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졸업 후, 돈을 모으고 사회생활을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석사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생활은 힘들었고, 대학교와 소중한 사람의 부재가 훨씬 크게 와닿았다. 그냥 석사를 2년 더 할 걸 이라는 후회가 막심했다. 석사가 아니더라도 졸업 전 정말 적은 월급이라 거절했던 중국현지 인턴기회도 고사한 것이 후화가 됐다. 고생은 하더라도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직장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
후회 말고는 엄마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엄마의 자랑이 되어야 하고 엄마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에게 전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어디를 갈 때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가지 말까 같은 생각 하며 매일 울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에서 나와 해외대학까지 졸업했다.
의사는 나에게 간단하게 두 가지 처방을 해줬다.
1. 마음은 아직 중국에 있고 이렇게 힘들어하니 중국으로 가라.
2. 엄마는 독립적인 존재고 내가 없어도 아직 젊고 혼자 살아갈 수 있다. 엄마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을 버려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하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만 바라보며 후회만 한다며 말이다.
그렇게 정신과도 다녀오고 사촌언니와 만나 아주 긴 상담을 한 끝에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퇴사한 이유 배부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렇다.
1. 10년 뒤에도 내가 이 산업에서 일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 마디로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2. 장시간 서서 일하고, 스케줄 근무, 보장되지 않는 식사시간. 법률상으로 의자를 줘야 한다고 하는 동료의 말과 다른 매장에는 다 있는 의자가 우리 매장에만 구비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의자를 구비해 두면 너무 앉아있을까 봐 그랬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젊은 사람들만 있다고 어떻게 근무시간 내내 서있게 하냐...
3. 건강악화
4.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퇴사 후 나의 삶을 리셋했다. 나의 과호흡도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