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었다. 길가에 진분홍, 연분홍, 새하얀 꽃들이 고운 가을 햇살을 받아 춤추듯 흔들리며, 그 꽃길은 동네 아이들에게 작은 세상 같았다. 우리는 매일 그 길을 걸으며, 가을의 따스함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운동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얀 꽃은 백군을, 분홍 꽃은 청군을 상징하며, 그 꽃길에서 우리는 그 승패를 점치듯 서로 응원하거나 도발하기도 했다. 코스모스의 꽃송이 하나하나가 승리의 징조처럼 느껴졌고, 그 길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경쟁의 장이 되었다.
내 짝꿍이었던 옥남이는 백군이었다. 어느 날, 옥남이는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하얀 꽃송이가 더 많아서 백군이 이길 거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야, 분홍 꽃이 더 많아서 우리 청군이 이길 거야!”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고집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어느새 우리는 길바닥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며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있는 손끝으로도 진지함을 느끼며 싸웠다.
그때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들은 마치 우리를 응원하는 듯 보였다. “청군도 이겨라, 백군도 이겨라.” 꽃들이 고개를 흔들며 우리에게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이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했다. 코스모스 꽃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그 길은 매일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 코스모스 꽃길이 남아 있다.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옥남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웃으며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