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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nam 2시간전

코스모스 꽃길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코스모스가 만개해 있었다. 길가에 진분홍, 연분홍, 새하얀 꽃들이 고운 가을 햇살을 받아 춤추듯 흔들리며, 그 꽃길은 동네 아이들에게 작은 세상 같았다. 우리는 매일 그 길을 걸으며, 가을의 따스함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운동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얀 꽃은 백군을, 분홍 꽃은 청군을 상징하며, 그 꽃길에서 우리는 그 승패를 점치듯 서로 응원하거나 도발하기도 했다. 코스모스의 꽃송이 하나하나가 승리의 징조처럼 느껴졌고, 그 길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경쟁의 장이 되었다.


       내 짝꿍이었던 옥남이는 백군이었다. 어느 날, 옥남이는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하얀 꽃송이가 더 많아서 백군이 이길 거야.”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야, 분홍 꽃이 더 많아서 우리 청군이 이길 거야!”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고집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어느새 우리는 길바닥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서로의 머리채를 잡으며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있는 손끝으로도 진지함을 느끼며 싸웠다.


        그때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들은 마치 우리를 응원하는 듯 보였다. “청군도 이겨라, 백군도 이겨라.” 꽃들이 고개를 흔들며 우리에게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이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했다. 코스모스 꽃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그 길은 매일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 주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없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그 코스모스 꽃길이 남아 있다.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옥남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웃으며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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