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마시는브라운 Nov 18. 2024

나의 오래된 벗에게(커피 예찬)


 내가 널 처음 만난 건 중학교때 자판기 앞에서였어. 친구들이 널 먹으면 공부하는데 집중이 잘 된다고 하더라. 부모님은 건강에 좋지않고 키가 크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며 널 멀리하라고 했지만 주변 친구들 중 한 두명씩 널 만나는 걸 보면서 나도 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 시험기간 잠이 오기 시작한 나는 너를 만나보기로 결심했어. 200원을 들고 자판기 앞에 가서 처음으로 너를 뽑아보았지. 하얀 종이컵이 내려오더니 위에서 주르르 흙탕물이 흐르더라. 흙탕물이 멈추고 난 조심스럽게 널 꺼내보았어. 손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어. 나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너에게 입을 맞추었어. 너를 처음 맛 보았을때 그 강렬한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첫 맛은 달았지만 끝맛은 쓰고 텁텁했어. 나는 반 정도 먹고 너를 버려야 했지. 하지만 잠을 줄이고 반짝이는 정신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나에게 너는 큰 유혹이였어. 결국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갔고 자판기 앞에서 널 또 마주했고 점점 너의 달지만 쓴 맛에 익숙해져갔어. 종이컵에 담겨있는 널 다 먹었고 그 날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생각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지. 나는 점점 너에게 의존하기 시작했어. 널 먹지 않으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고 너는 기꺼이 나의 공부 파트너가 되어주었어.

 너의 중독성은 참 강력하더라. 널 못 먹는 날에는 너가 생각나고 흐린 정신의 내가 적응이 되지 않았어. 나는 매일 널 찾았고 너는 내가 공부하는 힘든 순간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곁에 있어주었어. 하지만 널 너무 많이 먹은 날은 밤에 흥분이 되어서 잠이 오지 않아서 다음날 하루를 망치게도 만들었지. 또 속이 편하지 않아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려야 했지. 나는 적정량의 널 먹는 법을 배워야 했어.

 대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커피숍에 가서 아메리카노라는 커피를 알게 되었어. 외국사람들은 주로 아메리카노를 먹는다는데 단맛이 없는 이 쓴 맛을 대체 왜 좋아하는지 처음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곧 단맛이 빠진 커피의 본질적인 맛을 가지고 있는 너의 진가를 알아버렸어. 쓴 맛 속에 느껴지는 달콤함, 고소함과 구수함까지.

 임신을 하고 너를 만나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를 자주 만나지 못했어. 하지만 난 항상 너가 너무 그리웠어. 커피숍 앞을 지나갈때 너의 냄새가 날 유혹하기도 했어. 그때 디카페인 커피라는 아이를 알게 되었고 너의 맛과 향이 너무 그리울때 디카페인이라는 아이로 잠시 너의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했어. 

 너는 어떤 장소에서 먹는지, 너를 만든 사람, 물의 온도, 컵의 온도 등 다양한 변수와 상황에 따라서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지. 가끔은 내가 너의 미묘한 변화들을 다 느끼지 못할 때도 있어. 하지만 난 너가 어떤 형태와 모습이든 널 좋아하고 있어. 

 너와 함께한 시간도 어느덧  25년이 훌쩍 넘었구나. 너와 함께여서 내 삶은 더 또렷하고 밝게 빛날 수 있었어. 앞으로 50년은 더 너와 함께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