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씩씩 거리며 걷어둔 팔의 전투복을 다 내리면서 말했다. 선임들의 어이없어하는 표정들이 아직 선하다.
여름 군번이었던 나는 훈련소를 거쳐 강원도 화천으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드디어 나의 이등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름에 군대를 입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민간인의 여름과 군인의 여름은 느낌부터가 다르다. 땀이 나면 옷을 얇게 입을 수 있고 더우면 시원한 음료라도 찾아 마실 수도 있는 민간인과는 달리 군인은 더위를 참는 것도 훈련인양 두껍기도 하면서 팔이 긴 전투복(그나마 여름에는 팔이라도 접어 입어 다행이랄까?)을 입고, 식사시간이나 일과시간 이후가 아니고선 편하게 물을 마시지도 못한다.
물론 소위 ‘짬’이라는 경력이 좀 쌓이면 살짝 달라지긴 하지만 거기서 거기다.
또한 일반적인 도시와는 다르게 강원도의 자연환경은 과학적 사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군대에는 여름과 겨울을 대표하는 양대 작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름 제초작업과 겨울 제설작업이다. 물론 군대의 높은 어르신들은 작업이란 말 대신에 작전이란 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신병’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작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나온다. 일보다는 훈련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명감과 애국심이 조금 더 드는 것 같기도...?
그중 내가 먼저 마주한 것은 제초작업이었다. 6월에 군대를 입소했던 나는 8월쯤 훈련을 마치고 이등병이라는 훈장과 함께 자대배치를 받았다. 뜨거운 8월의 강원도란... 정말 더워도 너무 더웠고, 뜨거워도 너무나 뜨거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항상 구름이 단 한 점도 없어 그냥 뜨거운 파란색이었고, 다시 고개를 떨궈 아래를 바라보면 연병장을 포함한 아스팔트 및 땅들은 담배연기 마냥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워올랐다. 게다가 난 땀도 많은 체질이라 벌써부터 아득한 느낌이었다.
“3소대, 3소대 전달합니다. 오늘 탄약고 뒤편 제초작업 예정되어 있습니다. 10명, 10명 차출해서 13시 10분까지 막사 앞으로 집합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전달 끝.”
자대배치를 받은 지 이제 1주일쯤 되었을까? 내무반에서 하릴없이 차렷자세로 앉아있던 나에게 방송이 들려왔다. 나는 부동자세는 유지한 채로 눈치껏 좌우를, 정말 눈만 살짝 돌리며 살펴보니 이등병, 일병 선임들이 부리나케 전투모를 챙겨서 뛰어나가고 있었다. 마침 옆에 있던 같은 분대 바로 윗선임이 나에게도 준비하고 나오라고 했다. 물론 큰 목소리로 말이다. 화가 난 것 같이 말이다.
막사 앞은 이등병 4명, 일병 5명, 그리고 말년병장 1명 총 10명이 모였고, 준비상태를 점검받고 탄약고 뒤편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 간에 군가도 힘차게 부르며 말이다. 첨언이지만 당시 나는 군가를 참 좋아했다. 뭔가 함께 한다는 소속감도 들었고, 나름 가락도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다.
탄약고에 우린 도착했고 각자의 도구를 챙겨서 근처의 풀이란 풀은 모조리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풀을 뽑는 게 말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왜냐? 원래 군대가 그렇다. 원래 그렇다. 분명 인원은 10명이 나왔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는 낫 4개와 삽 4개가 전부였다. 그 장비들 또한 붉은색과 주황색의 녹을 두르고 있는 것들로 말이다.
자, 그럼 여기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자. 사람은 10명이다. 장비는 총 8개, 10명 중 말년병장은 당연히 작업감독이고, 또 당연하게도 모든 일은 장비빨이란 것을 다들 알기에 그 탐나는 장비들 또한 경력순으로 배정이 된다.
이해가 되는가? 맞다. 나는 그냥 내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풀을 뽑아야 했던 것이다. 어쩐지 이 더운 날에 가죽장갑을 챙기라고 하더라니, 순간 소름 끼치게 이해가 되어 버렸다.
이등병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천성이 긍정적이다 보니 구석탱이에 앉아 신나게 풀을 뽑았다. 포항이라는 분명 지방 출신이었지만, 지방이라고 제초작업을 손으로 하지는 않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마침 그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후임들에게 장난칠 거리를 찾고 있던 말년병장의 독수리 같은 눈에 내가 걸려들었다.
이름도 상당히 특이했다. 이길수병장. 선임들이 몰래 '단결,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매번 장난치는 걸 많이 봤다. 항상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이길수 병장이 내 쪽으로 스윽 다가왔다.
"오... 이등병이 손이 보이네?"
"...? 아닙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치가 없지는 않은 나였기에 좀 더 손을 빠르게 놀리며 풀을 뽑았다. 하지만 원체 땀이 많아 더운 걸 싫어하는 나이기도 하고 강원도의 여름은 만만한 녀석도 아니었고, 그리고 난 아직 이등병이기도 했다.
"오... 그래도 아직 손이 보이네. 손이 보여"
아휴... 짜증이 난다. 팔도 너무 아프다. 허리를 숙이고 풀을 뽑다 보니 이마에 맺힌 땀이 눈에 들어가 서러운 눈물인지 땀인지 구분도 안 간다. 옆에서 지켜보며 재촉하는 이길수 병장의 갈굼에 내 손은 더욱 빠르게 움직였고 덩달아 내 숨도 가팔러져 갔다. 또한 나의 짜증도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이야... 이등병이 아직 손이 보여?"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또 나의 예쁜 손이 보인다는 말년병장의 속삭임과 동시에 순간 '탁'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들렸다. 동시에 내 몸은 멈추었고 팔꿈치까지 접어 올려 두었던 전투복을 촥촥 소리 내며 내려 손등까지 덮었다. 그리고 이길 수도 없는 이길수 병장에게 나의 혼신의 짜증을 담아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이제 손이 안보입니까?"
순간 작업장의 모든 인원들의 숨도 갑자기 멈추며 정적이 흘렀다.
일손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는 이등병들과, 경악에 가까운 눈빛의 일병들. 찰나처럼 긴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한동안의 멈추었던 영화는 "하... 군대 꼴 잘 돌아가네 이제. 아휴... 빨리 내가 집에 가야 이런 꼴을 안 보지"라는 말과 함께 그제야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던지고 그 사람은 약간은 멋쩍고, 또 조금은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다른 한쪽으로 가면서 상황은 일단 종료되었다.
그 이후의 일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굳이 설명하지면 말년병장과 나 사이의 모든 선임들에게 몇 날은 갈굼을 당한 것 같다.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왜 참아야 합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었다.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관리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해지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할 수 있고, 친구 간에 참으면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을 '忍'은 칼(刀)과 마음(心)이 합쳐진 말로, 이는 감정을 날카로운 칼처럼 억제하고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나는 내 마음을 칼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다루기보단 마음을 칼처럼 휘둘러 버린 것이다.
인생을 알아 간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 익어간다는 것은 바로 참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여러 우당탕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난 무사히 군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인생이 원래 그렇겠지만 반전드라마처럼 나는 군생활에 재미를 느껴 부사관생활까지 총 5년의 군생활로 나를 채우게 되었고, 그날의 경험이 나를 좀 더 '忍'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