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꿈

by 질풍가도

워 워우어 워우어 워우어어


워우어 워우어

「너를 나만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꿈이 생긴 거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룰 거야.」

중략

1995년에 나온 터보의 '나 어릴 적 꿈'이라는 노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신나는 템포에 맞춰 많이도 흥얼거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특히나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생각할 때면 더 열정적으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내 어릴 적 꿈이 노래 가사처럼 마초적인 꿈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릴 적 내가 가져본 첫 꿈은 과학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학자라기보단 발명가에 가까웠던 것 같은 기억이다. 어려서는 위인전을 즐겨 읽었던 터라 그중 에디슨이 기억에 많이 남았었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실행력이 참 좋았던 나는 그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후 바로 부모님께 내 꿈을 이야기했다.


“엄마, 내 과학자 될라 그라는데, 근데 과학자 될라면 실험을 해야 하거든. 근데 나는 실험실이 없는데 어야노?”


나의 이 허무맹랑하고 앞뒤 없는 말에 부모님은 흔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하실 한켠을 내어 주셨다.

아, 우리 집이 지하실도 있는 그런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당시에 우리 집은 야식집을 하면서 그 집에서 숙식을 같이 해결하고 있었다. 거기 지하에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조그만 지하실이 딸려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나름 내 실험실을 가진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당당하게 과학자가 되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고 실험실(?)까지 얻어 냈는데 막상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 실험실을 뺏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엄마가 추어탕을 하신다고 미꾸라지를 시장에서 사 오셨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맞다, 원래 과학자 하면 해부 아이가’


미꾸라지를 해부해 보겠다는 생각에 신이 난 나는 엄마에게 미꾸라지 한 마리를 얻어 조심스레 실험실에 가져갔다. 당연히 실험실에 준비된 해부학 기구는 도루코 칼과 돋보기가 전부였다. (사실 그전에 부모님께 현미경을 사달라고 조르다 쫓겨날 뻔했다.)

하얀 천을 깔고(사실은 못쓰는 흰 수건이 정확하다.) 그 위에 미끈한 미꾸라지를 가지런히 눕히고 드디어 미꾸라지에 칼을 대려고 했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지하실의 주황색 백열등과 덩달아 내 얼굴도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으아!’


나는 놀라서 칼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의자에서 뒤로 훌러덩 넘어졌다. 너무 놀라 손이 덜덜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미꾸라지가 안 움직일 줄 알았다. 칼을 대면 꿈틀대는 게 당연할 텐데 나는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왜 난 안 움직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참...)

그렇게 갑작스러운 내 해부용 미꾸라지의 몸부림에 나는 그 길로 해부의 길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해부는 접기로 했다. (사실 지금도 겁이 많은 건 마찬가지다.)


시간이 나를 재촉했다. 무언가 부모님께 거창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야 왠지 지하실을 뺏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사로잡았다.

당시 우리 집 차는 대우에서 만든 그 유명한 ‘티코’였다. 미니멈의 상징이었고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날아갈 듯한 차였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도로를 달리다 티코는 껌을 밟으면 붙어서 못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맞다, 원래 위대한 발명은 주변에서부터 시작하는 거 아이가’


나는 다시 용기를 내었다. 어렸지만 그렇게 모자란 애는 아니었기에 껌에 자동차가 붙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도전하려고 한 건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


기필코 티코를 바닥에 붙여보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실험에 들어갔다. 또 이야기하지만, 초등학생이 무슨 지식과 생각이 있었을까.

단순히 접착성분이 있는 것들을 많이 모아 합치면 더 강력한 접착제가 나올 거란 생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하루는 자기 전 본드와 풀을 잔뜩 섞어 아버지 몰래 티코 타이어 밑에 듬뿍 발라두고,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시장 가시는 길에 티코가 움직이는지 관찰하였다.

물론 티코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움직였다.

그리고 또 하루는 사탕을 녹이고 본드와 풀, 강력접착제등을 섞어 몰래 발라두었고 또 하루는 기존 레시피에 밥풀과 껌까지도 섞어 발라두고 다음날 아버지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물론 우리 집 티코는 또 씩씩하게 잘 굴러갔다.


그렇게 내 첫 꿈은 티코와 함께 굴러가 버렸다.




요즘은 다시 꿈을 꾸고 있다.


어릴 때와 좀 달라진 게 있다면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어야지, 대통령이 되어야지가 아니라 지금은 'what' 보다는 'how'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떻게 진정한 나를 찾을 것인가'

'행복한 삶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근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더 어른스럽다.

인생의 방향키를 자신이 잡고 있음이 확실해 보이고 매 순간 그 방향키를 잡고 항해하는 게 보인다. 그래서 멋져 보인다.

멋져 보임이 아마 'how'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보여 그럴 것이다.


꿈에도 단계가 있다고 한다.

나야 아직 인생의 통찰이 부족해 정확한 그 단계까지야 잘 모르겠으나 'what'으로 시작해 'how'로 넘어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마 'who' 나 'why'도 있겠지.

아직 나는 그 뒷 단계까지는 생각할 시기는 아니기에 현재 당면한 'how'부터 잘 꿔가며 살아가 봐야겠다.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 다음 단계로 날 이끌어 줄 때가 있을 거라 믿는다.



참, 그때 그 미꾸라지는 어떻게 됐냐고? 너무 겁이 난 나는 그대로 양지바른 곳에 놔두고 그냥 집으로 왔다. 아마 동네 고양이에겐 뜻밖의 특식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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