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기를 당하는가 (4)
그는 자기소개를 했다. 카페에 올렸던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건강 이야기를 할 때는 주렁주렁 약봉지를 꺼내 보였고, 건축 인허가 이야기를 할 때는 익숙한 정치인 이름들과 생소한 고위 공무원의 이름들을 섞어 말했다. 시중 은행 지점장들과 본점 간부들을 손바닥 안에서 쥐락펴락하며, 말 한 마디면 융통하지 못할 자금이 없고 얻어내지 못할 허가가 없었다.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이 해온 알 듯 말 듯한 일들을 한참이나 설명하고는,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땅 관련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몇몇 사람들이 주저주저 손을 들어 이야기를 했다. 들어보니, 대체로 그린벨트와 같이 건축 허가가 어려운 땅을 잘못 사거나 물려받은 뒤 처분이 어려워 곤란을 겪는 이야기였다. 그는 코웃음을 치듯 웃으며. 한 사람씩 자신 있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있었고, 도면을 들고 자신을 따로 찾아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어, 공무원으로 생각되는 사람과 직접 통화를 해서 해결해 주기까지 했다. 그가 제시한 답에는 막힘이 없었고,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생각하게 된 일이지만, 그날 손을 들어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와 한 패가 아니었을까. 정교하게 짜인 무대 위에서, 나는 그저 입을 벌린 채 마술쇼를 보는 관객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흥분을 넘어 감격까지 느끼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까지 재능을 나누어 주려 하다니.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날의 연설을 마쳤다.
"이 분들 땅 같은 거 해결하는 게 제 업입니다. 오늘 와서 보니까 제가 여러분 초대하길 자알 했습니다. 우리 다음 주에도 봐야겠네요. 그냥 보면 재미 없으니 숙제 하나씩들 하십시다."
숙제는 이랬다. 이렇게 개발이 금지되어 있는 땅들 중, 개발 허가만 나면 금싸라기가 될 땅들을 한번 찾아와 보라는 것. 다음 모임은 그런 땅을 찾아온 사람만 참석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두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이 사람 눈에 들어서, 그가 가는 길에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