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는 1969년, 경북 예천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은 부산으로 이사를 오셨고 새로운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경험 부족으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6평 남짓한 집에서 다섯 식구가 어깨를 맞대고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무척 비관적인 아이였습니다. 힘겨운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린 나이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고통스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적어냈지만, 저는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다
그렇게 죽음과 미래를 외면하며 살던 제가 변화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한 해 늦게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가 함께 특활 시간에 SFC반을 신청하자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른 재 신청했는데, 거기서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SFC를 봉사 단체로 알고 있던 저에게 그 친구가 기드온 성경을 건네주었고, 저는 처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설 같은 내용이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앙을 갖게 된 후 비관적이고 무력했던 저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꿈이 없던 제 안에 비전이 생겼습니다.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5명의 동기 중 3명은 신학교에 진학했고, 저와 다른 한 명의 친구는 일반대학교를 진학하였습니다.
광야 같은 시간
법대에 진학했지만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시간은 광야와 같았습니다. 다섯번의 2차 논술시험을 치르고서야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 같은 시간이 오히려 귀한 선물이 되어 저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을 낮추셨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생각했기에, 이후 어려운 문제들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였던 결혼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2004년 사법연수원에서 함께 신우회 활동을 하던 믿음의 자매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이후 통합교단에 소속된 교회로 옮기면서 종교 개혁에 비견할 수 있는 신앙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을 경험하다
2006년 교회를 옮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허리 통증이 심해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도 찾지 못했고, 치료 효과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편한 자세가 기도하듯이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치유의 밤' 집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허리 아픈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어 양 손바닥을 붙여서 앞으로 뻗게 했는데, 오른쪽 손바닥이 왼손보다 한 마디 정도 짧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목사님께서 치유를 위한 선포 기도를 하셨는데, 순간 척추가 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길어졌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허리 통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신자들을 인도하신다고 생각해 왔는데, 성령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기적을 베푸시고 은사를 주신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뒤 또 다른 집회를 통해 방언 기도도 시작하게 되었고, 동시에 영적 세계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교리에 관한 책도 함께 탐구했습니다. 평신도가 이렇게 파고드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소책자에서 이런 말을 발견했습니다.
"철학이나 다른 학문은 인간의 삶과 큰 관련이 없지만, 신학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구원과 행복에 관련된 것이기에 신학 공부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한다."
이 말이 저의 열정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다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을 메모하고 주제를 정리하면서, '언젠가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보다 먼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던 아내가 권유해 주었고, 무난하게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생각해 왔던 주제들로 글을 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정말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기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더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글을 쓰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소망이 깊어지던 그때, 우연히 지인 중에 본업을 하면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나 매주 며칠씩 출석하는 대신 하루 종일 수업을 듣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신대원 진학의 마음을 이야기하자 아내가 흔쾌히 동의해 주었습니다. 마치 "그렇게 책을 탐독하더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인도하심
3년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인이 졸업한 신학대학원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인임에도 장로교 신대원에 입학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장로교인으로 알고 있는 교리를 다른 교단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동시에 성령을 강조하는 교단에서 성령님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순복음대학원을 알게 되어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 허가를 받고 등록을 마치자, 온갖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3년의 과정을 변호사 일과 병행하면서 잘 해낼 수 있을까', '매주 서울을 오고 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개인적인 욕심은 아닐까', '특별한 소명도 없는데 신대원에 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영성수련회에서 받은 확신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026년 2월 23일, 영성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부산역에서 서울역을 거쳐 사당역에 있는 학교로 향했습니다.
오전 시간에 찬양을 드리는데 왠지 모를 울컥함이 밀려왔습니다.
나의 길~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
그리고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장 27절)
말씀으로 전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더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신학을 하십시오.
성령님을 이용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충만이라고 하면 은사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분명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진학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오후에는 총장님께서 '구약에 나타난 성령님'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해주셨는데, 너무나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나중에 브런치에 '성령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충실하게
영성수련회가 끝난 뒤 벅찬 가슴을 안고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입학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너무도 만족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대원에서 수업을 듣자, 이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구슬들이 하나씩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각 따로 놓여 있던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사용하실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끌어 주신 이 순간, 이 자리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에필로그
멀마 전에 아내가 업무차 당일 일정으로 서울에 다녀오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매주 서울에 갈 수 있어요. 대단해요.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해 당신이 탁구 레슨을 받고 열심히 운동하게 하셨나봐요!
사실 우연한 기회에 탁구 레슨을 받게 되면서 탁구 동호회 활동을 해 왔습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니 2022년 10월경 시작했으니 신대원 입학 전까지 3년 조금 넘게 탁구로 건강을 다진 셈입니다.
그렇게 3년 남짓 저축한 체력을 앞으로 신대원 3년 동안 이용하게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