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 의미

프롤로그

어느 주일 예배가 끝난 후, 교회 로비에서 두 성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복음주의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아, 저도 복음주의자예요!"

두 사람은 반갑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한 분은 예배 형식과 뜨거운 부흥을 강조했고, 다른 분은 성경의 엄밀한 교리와 신학적 정확성을 강조했습니다. 서로 '복음주의자'라고 했지만, 생각하는 내용은 꽤 달랐던 것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여러분도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그 수업을 통해 배운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크게 세 가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첫째, 오늘날 복음주의가 직면한 위기는 무엇인지
둘째, 복음주의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셋째, 복음주의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렵지 않게 풀어드릴 테니, 편안한 마음으로 따라와 주세요.


1. 복음주의, 사실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위기 — "우리가 누구인지 모른다"

많은 성도들이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복음주의가 뭔가요?"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정의가 없을 만큼, 복음주의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신학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복음주의는 특정 교파나 딱 하나의 신학 체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신앙고백 아래 느슨하게 묶인 신앙 공동체"라고요.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복음주의의 뿌리를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부흥운동 — 이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위기 — "머리보다 감정만 앞선다"

복음주의 안에는 오랫동안 반지성주의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일부 경건주의 흐름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오직 삶과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신학적 사고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흥운동 역시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강조하다 보니, 깊은 신학적 성찰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오히려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뜨거운 마음도 중요하지만,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학적 훈련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위기 —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

복음주의 안에는 굉장히 다양한 그룹들이 존재합니다.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은사파와 비은사파... 이러한 다양성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양성이 서로를 향한 독선과 배타적 분열로 이어질 때입니다.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신학자 존 웨슬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이라는 본질 위에서 하나가 되는 것 — 이것이 복음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2. 그렇다면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용어의 역사부터 살짝 살펴보면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교회의 형식적 신앙에 반대하며 성경적 신앙의 회복을 주창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는 루터를 따르는 개신교도들, 즉 로마 가톨릭과 구별되는 사람들을 뜻했습니다.

17세기에는 '복음주의자'와 '프로테스탄트'가 거의 같은 말로 쓰였습니다.

현대에 와서 복음주의는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18세기 대각성운동 이후의 신앙 전통 전체를 가리키고,

좁은 의미로는 20세기 중반 근본주의와 거리를 두며 등장한 '신복음주의' 그룹을 가리킵니다. 1942년 미국에서 해롤드 오켄가의 주도로 설립된 전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복음주의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복된 소식, 즉 복음을 보존하고 선포하려는 기독교의 역동적인 운동"


복음주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네 가지 특징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베빙턴(David Bebbington) 교수는 복음주의의 핵심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이것을 '베빙턴의 사각형'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운 정리입니다.

① 회심주의 (Conversionism) 복음주의는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 즉 '회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는 체험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② 십자가 중심주의 (Crucicentrism) 회심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주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의 중심에 놓습니다.

③ 성경주의 (Biblicism)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이기도 하며, 자유주의 신학과 복음주의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선이기도 합니다.

④ 행동주의 (Activism)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나눠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물론,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복음주의의 특징입니다.


3. 복음주의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복음주의를 이해하려면 역사의 흐름을 큰 그림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 흐름만 짚어보겠습니다. 앞으로의 수업에서 한 부분씩 자세히 다룹니다.

뿌리 — 16세기 종교개혁

모든 것은 루터와 칼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루터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을 외치며 로마 가톨릭의 형식주의와 싸웠습니다. 이 개혁의 정신이 복음주의의 뿌리가 됩니다.

첫 번째 줄기 — 17세기 청교도운동과 경건주의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이 성경적 신앙을 삶 전체에 적용하려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 신앙을 머리가 아닌 가슴과 삶으로 실천하려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이 두 흐름은 서로 강조점은 달랐지만, 모두 형식화된 신앙을 넘어 살아있는 신앙을 추구했습니다.

두 번째 줄기 — 18세기 대각성운동

18세기는 복음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을 이끌며 교회 갱신을 이루었고, 미국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통해 제1차 대각성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경험했고, 신앙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줄기 — 19세기 부흥운동과 성결운동

19세기 초, 찰스 피니 등을 중심으로 제2차 대각성운동이 미국을 휩쓸었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한 개인 구원을 넘어 노예 폐지, 도덕 개혁, 선교 등 사회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이 흐름은 이후 성결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신학적 토대 위에서 더욱 발전했습니다.

네 번째 줄기 — 20세기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20세기 들어 자유주의 신학이 확산되자, 이에 맞서 성경의 권위를 지키려는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점차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학문을 불신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성하며 등장한 것이 신복음주의입니다. 해롤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레이엄 같은 인물들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근본주의의 핵심 신앙은 지키되, 지성과 사회 참여를 회복하자"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음주의의 모습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 외 흐름들

이와 함께 오순절운동(성령의 역사와 방언, 신유 강조), 성령은사운동, 진보적 복음주의 등 다양한 흐름들이 생겨나며, 오늘날 복음주의는 매우 다채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였습니다. 교회에서도, 대화에서도, 글에서도. 그런데 막상 복음주의를 정의하려고 하자 어려웠습니다.

이번 신학대학원 수업을 통해, 저는 비로소 복음주의의 정확한 의미와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천을 대략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에서 시작하여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대각성운동, 성결운동, 근본주의를 거쳐 신복음주의에 이르는 흐름을 듣다 보니, 오늘날의 복음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길고 긴 역사의 산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쉽게 배워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주의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 알리스터 맥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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