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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15. 2024

튤립의 꽃말이 뭔지 알아? 희망이래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 4

유난히 표현이 어수룩한 그였다. 결혼 전엔 그게 대수롭지 않았다. 1주년을 깜박해도, 예쁘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해도. 애정 표현은 적더라도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인정할 뿐이었다. 그래, 신뢰란건 그런 것이었는데.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남여의 사이가 무너진 것,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인간성과 생각,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는 시간들이었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던 날부터 내게 프로포즈 하며 꽃을 건네던 그의 수줍은 두 손, 웨딩드레스를 입은 날보며 코끝이 빨개지며 눈물 짓던 그의 표정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전에는 별거 아니였던 그 애정표현에 목숨을 걸었다. 하루에 한번 이상은 내게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해줘라, 예쁘다고 해줘라, 이렇게 말해라 저렇게 행동해라. 

그러나, 표현이 서툰 그의 행동은 어떻게 해도 내 기대를 미치지 못 했고, 내 기준을 넘지는 했다. 그럴 때면 그 다름을 틀림으로 밀어부치며 그의 노력을 폄하했다.


사실 그렇게 한들 내 마음이 내가 원하는대로 풀어졌을까, 이러면 이러는대로 저러면 저러는대로 나는 분노했을 것이고 울분을 토했을 것이고 그렇게 그를 탓하며 원망했을 것인데.


그는 점점 내 눈치를 보고, 내게 말을 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할지 본인을 점검했으며, 그렇게 입을 닫아갔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본 날이다.


사실 그가 포기하고 싶다고 한다면 이 놈 저 놈 욕하면서 더이상 잡을 이유를 두지 않고 갈라서고 싶었다. 내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너가 날 포기한 것이라고.

또 한편으로는 헤어짐을 말할까봐 겁이 났다. 버려지는 것 같은 기분을 이겨낼 수 있을까. 더 이상 인간이란 기대가 내게 남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름 부던히 노력했음에도 내가 헤어짐을 고하는 날이면 본인도 무너지곤 했다고, 그러다가 내가 하루 웃으면 또 그 웃음으로 살았다고. 본인이 어떤 노력을 해도 불가능할것이란 생각을 하는 날에는 나를 위해서라도 헤어짐을 마음 먹어야할지 생각했다고. 그리고는 덧붙였다. 혹여 네가 본인과 살 마음이 있다면 조금은 있는 그대로 본인을 바라봐주면 안 될지, 한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여전히 노력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그의 메시지를 읽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안정감을 느꼈다. 신뢰가 무너졌음에도 이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낀다는게 참 아이러니했지만, 여전히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이 전까지는 노력하겠다고 말했음에도 난 굳이 내 슬픔을 그에게 드러내곤 했다. 덮자고 했지만 덮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가 내 힘듦을 알아주길 바랬기에 몰래 훔칠 수 있는 눈물도 꺼이 꺼이 뱉어내곤 했다. 그럼에도 버텨내는 내 자신을 알아주길 바랬고 고마워해주길 바랬다.


그래, 이제 내 노력은 그를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함이다.

그와 사는 것을 생각할 때가, 살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포기일 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이 것 또한 새로운 시작일 수 있겠지. 


그날 밤, 귀가한 그의 표정은 걱정스러운 눈빛과 상기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집에 오기 전, 잠깐 통화했던 내 목소리가 조금은 밝아보여서였을까. 그의 손에는 노란 튤립이 들려있었다.


'이 튤립의 꽃말이 뭔지 알아? 희망. 희망이래'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결혼 생활에 0.01%의 희망을 보았다. 그가 조금 짠하기도 하고, 마음 아리기도 한. 고맙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꽃일지라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꽃을 샀을지 안다. 이 것이 치유의 한발짝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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