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안녕 Dec 14. 2024

그 남자의 거짓말

(양치기의 no양심 로맨스) 마지막 편

증인신문이 진행되던 날, E와 B는 법정 밖에서 대기하면서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B의 무릎에는 여성용 샤넬 가방이 있었습니다. 법원 경위가 B의 이름을 부르자, E와 B는 각자 법정으로 들어갔는데, 그 이후부터 샤넬 가방은 E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B가 E와 함께 온 것이 분명해졌고, A는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B는 위증을 하지 않겠다고 선서했고, E의 변호사는 B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B는 ‘A에게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혔는지’라는 질문에 ‘A가 있는 곳에서 셋째, 넷째 자녀들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서, A가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E의 변호사는 꼬깃꼬깃한 종이 하나를 그 자리에서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그 종이는 A가 B로부터 사실확인서를 받기 위해 확인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적어 건네줬던 것이었습니다. 


B는 A가 사실확인서를 써달라며 일방적으로 그 종이를 주었고, A가 쓰라는 내용대로 확인서를 써서 준 것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B는 A가 그 종이를 파기하라고 했으나 혹시 몰라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E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뗐습니다. A는 B에게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있으리라 기대했던 자신의 실책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B는 A의 변호사가 ‘회사에 재혼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는지’를 묻자, ‘왜 회사에 알려야 하느냐’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고, ‘1년 전 A가 E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고 사실관계를 따졌을 때, E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전처와 서류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 이유’를 묻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잡아뗐습니다. B는 시종일관 A에게 불리한 진술을 반복했고, A의 변호사는 B의 증언에서 더는 얻을 내용이 없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증인신문을 끝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한 A는 친한 동료로부터 B와 친분이 있는 본사 직원이 한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사 직원은 B의 와이프가 상간녀 소송을 했는데, 그 직원(A)이 B를 받아주지 않으면 재판에 불리하게 진술해 상간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A는 마지막까지 치졸함의 끝을 보여주는 B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A는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B로부터 남은 3,000만 원을 받기는 것을 포기하기로 하고, 직장 동료들에게 상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다행히 A를 오래 알아온 직장 동료들은 A의 편이 되어 주었고, B가 A에게 한 모든 짓들에 대해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동료들은 B가 직장에서 이혼남으로 행세해왔고, 누구도 B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이혼 남녀인 A를 B와 엮어주려고 했었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해 연명부까지 만들어 A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A를 위해 만들어 준 문서는 A의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제출되었습니다. 한 달 뒤로 선고일이 잡혔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A는 또다시 불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이제는 희망을 품고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회사에는 B가 외국인 여성과 재혼한 사실을 숨기고 이혼남 행세를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던 B는 판결이 선고되기 며칠 전에 본사에 전출을 신청했다가 반려되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는 말이 들려왔고, 그 이후로 A는 B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A는 선고가 시작되는 오전 10시 전부터 휴대전화를 양손에 꼭 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벨이 울렸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재판부는 B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고, A가 B의 거짓말에 속은 피해자라고 판단했습니다. A의 뇌리에 처음 소장을 받았을 때의 충격과 B의 거짓말로 시작된 지난 5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억울하게 소송에 휘말렸기 때문에, B에게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A는  B를 응징하는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B와 결혼한 E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A는 재판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더는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만나서 더러웠다. 다신 보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