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의 비밀
간단하다.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면 그 키를 가진 자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더 간단하게 그 키는 바로 당신이 가졌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던 것은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성경이 과학서적은 아니므로 검증 가능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용 속에 숨어있는 중의적 의미를 해석 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야훼께서 아담과 이브가 수풀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목소리로만 "저 여기 있어요~" 하는 순간 아시게 되었다. "이것들이 기어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구나.... 이런 고이헌 것들!!!!"
야훼께서 불같이 화를 내며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들을 기어이 에덴으로부터 쫒아내셨다.
그후로 그들은 온갖 고통에 신음하는 삶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이후 유대인들의 고단한 역사가 시작된다.
그들은 그것이 유일한 선민 민족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본다.
야훼는 어떻게 그들이 수풀속에 숨어 부끄러워하자 대번에 "저것들이 선악과를 먹었구나!"라고 알게 되었을까? 그건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부끄러움을 몰랐다는 것일까?
그렇다! 문맥상 그들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벌거벗고 있다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자 갑자기 벌고 벗고 다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고 야훼가 찾으시자 놀라 수풀속에 벌거벗은 몸을 숨긴 것이다.
"부끄럽다"라는 생각은 분별심이다.
부끄럽지 않은 것과 부끄러운 것이라는 기준이 있어야 생기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선악과'를 먹고나서부터 '분별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삶의 고통은 바로 분별심을 지니기 시작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유대민족 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고통이 분별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어떤 민족은 그보다 더 독하고 대다수의 민족들은 그들보다 조금 덜 독할 뿐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모든 인류가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면?
간단하다.
분별심을 버리면 되는 일이다.
엉뚱하게 유대교의 창세기에서 불교의 반야심경으로 뛰어본다.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하다는 것을 앎으로서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오온이란 우리가 외부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행동하여 업을 쌓는것을 의미하고 그것으로부터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에 찌들어살게 되는데 알고보면 그게 모두 공한 것이라는 말이다.
공(空)하다는 것은 비어있다는 뜻이 아니다.
별거 없다. 똑같다.
안과 밖이, 너와 내가, 나와 세상이, 나와 우주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과 밖이 같으므로 밝은 것과 밝은 것이 사라지는 것, 아름다운 것 추한 것, 맑은 것과 더러운 것, 늘어나는 것과 줄어드는 것, 살고 죽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아담과 이브는 야훼와 다른 존재였을까?
분별이 없으므로 서로 부끄러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구분한다. 분별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하게 분별심을 버리면 된다!라고 말하고 끝.하고 돌아설 수 있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어쩌다 창세기 에덴동산을 떠올리다 선악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분별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머리 속에서 블라블라블라~
삐져나온 바지주머니에 붙어있는 영수증을 떼어내서 들여다보고 바지 주머니는 다시 안으로 밀어넣는 마음으로 한 글 올려봅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에덴동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