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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통증 그리고..

(유방암 4기: Life goes on 9)

by 우유강

Life goes on~을 호기롭게 외칠 수 있는 시간이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말기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고요.


사용할 수 있는 항암제가 아직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도! 해보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포독성 항암제를 쓰거나 좀 많이 비싸지만 거의 신약이나 다름없는 표적항암제를 써보거나...

표적항암제는 암의 진행을 저지시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암세포를 찾아서 죽이는 기능은 세포독성 항암제들이 주로 했던 일이고요.


하지만 이제는 흉수가 폐, 심장 주위에 차 있고 간 주위도 혈관이 많이 부어있는 상태이다 보니 새로운 시도가 굳이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숨이 차서 산책도 힘들어졌고 진통제 때문인지 위장도 난리가 나서 위경련이 자주 일어나서 찜질백을 거의 안고 생활합니다. 사실상 코데인 복용량도 규칙적으로, 타이레놀까지 거의 매일 추가해서 복용 중입니다. 숨이 차다 보니 지팡이를 짚어야 걷는 게 조금 수월해졌습니다.


아. 요즘은 캔에 들어있는 산소를 하루에 한 캔 정도 마십니다.

이건 등산용입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거나 누워있다 보면 숨이 차서 호흡이 거의 멎을 거 같은 때가 찾아오는데 그럴 때 저는 코에 대고 그냥 뿜뿜 산소를 직접 공급해서 땜질 처방해 봅니다.


이제야 제법 암환자 티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족 친지가 아니더라도 내가 탄 버스에, 지하철에 혹은 사무실에, 거리에서 나를 스쳐가는 건강하고 바빠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암환자들이 많을 겁니다.

암환자들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탈모가 와서 모자를 쓰고, 구토를 하고 퀭해서 힘들어하는 드라마 속 장면들은 항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에브리데이 에브리타임 나타나는 일은 아닙니다.

암환자인데도 열심히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힘든 항암을 하면서도 꿋꿋이 버티는 사람들이 의외로 주위에 많을 겁니다. 그분들께 깊은 경외감을 보내드리며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니, 올 7월까지만 해도 저 역시 그런대로 팔팔해서 암환자라 말하기도 머쓱했던 지라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증세들로 인해 갑자기 악화되어 가는 건강 상태를 보니 4기의 위험도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됩니다.


한두 달 전에 통증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아주 가늘게 콕콕 쑤시는 신경통증 비슷한 건 진단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바늘로 대놓고 찌르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면서 이알세미 서방정을 첫 마약성 진통제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폐렴 이후에는 코데인 계열의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며 기침으로 인한 통증을 진정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오후에 있었던 CT촬영 때문에 점심을 굶으면서 진통제를 건너뛰었다가 저녁에 시작된 통증에 정말 와! 이게 암환자들이 겪는다는 그 지옥의 통증이구나 하는 첫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칼로 살을 저미고 있는 듯한 통증. 경험해보지 못했던 넓은 영역의 날카로운 통증의 습격에....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그 통증이 찾아온다면 어쩌면 나라도 팔고 양심도 팔고 부모형제도 기꺼이 팔 수 있겠구나.라는 것을요.....

60년 대생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반공교육도 철저히 받았고 반일감정에도 충실해서 일제강점기 독립군 관련 영화를 보면 치를 떨면서 현재의 일본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당연히 북한에 대해서도 철저히 경계하자는 소신!! 을 가지고 살았거든요.

우리나라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나도 태극기 펼쳐들고 아니면 은밀하고 위대하게 도시락 하나, 권총 한자루 정도 들고 능히 싸울수 있다고 자신했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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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통증을 겪어보니 알겠습디다.

고문을 견뎌가며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는 동지들을 배신하지 않고 지키거나, 조국을 위해 그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숭고함.

인간 이상의 고귀함.


아직 모르핀계열의 진통제를 맞고 있지는 않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10월 말경에나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주어진 처방 만으로 위기를 넘기며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드라마 두 편을 흥미 있게 봤습니다.

[메리 킬즈 피플, MBC], [은중과 상연, Netflix]

스토리의 서사는 아름답거나, 스릴과 누아르까지 섞인 드라마지만 드라마에서 가장 임팩트 있게 다가왔던 것은 [안락사] 혹은 [조력사망]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둘 다 다른 나라 드라마를 각색한 내용이니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안락사(의사가 직접적으로 주사하거나 시행해 주는)와 조력사망(의사는 도와주고 환자 스스로 주사하거나 복용하는)에 대해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메리 킬즈 피플]은 청소년 시청금지였습니다.


통증에 시달리는 회복 가망 없는 말기암 환자들, 또는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안락사를 희망하게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드라마는 [메리 킬즈 피플]이고 긴 서사 끝에 절친과 함께 먼 스위스까지 날아가 [조력사망]을 선택하고 동행하는 이야기는 [은중과 상연]입니다.


저는 앞에서 통증이 다시 찾아온다면 나의 정신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것인가를 '조국도 배신하고 가족도 배신하고 양심도 팔 수 있겠구나'라고 표현했습니다.

통증은 병이 주는 고문입니다.

고문 앞에서 꿋꿋이 나를 잃지 않고 명료한 정신을 붙잡을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게 되었지요.

통증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나를 잃어가는 수많은 상황들을 저기 저 앞에 뻔히 두고도 그냥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마치 언젠가는 고문실에 끌려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반복될 것이고 그러다 결국 죽어갈 것인데도 그 고문엔 명분조차 없다는 게 더 허망한 일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 고통을 가족들이 여지없이 같이 지켜봐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엄청난 비용이 국가와 개인에 의해 지불되어야 하는 것 또한 일부분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건 생각에 따라 격렬한 논쟁의 여부가 있을 수 있는 의견입니다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말기암이나 통증에 시달리는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존엄사 법안이 [상정] 되었다가 되돌려지고 또 [상정] 되었다가 다시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법안 자체도 뚜렷하게 법적 책임을 환자 스스로 짊어질 수 있고 조력자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지 않게 장치가 든든한 내용도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다니는 병원 복도에도 [조력사망 또는 존엄사]에 대한 환자 인터뷰를 한다는 공고문도 붙어 있었습니다. 보다 나은 법안을 위한 사전 조사인 듯싶었습니다.

스위스로 나가는 우리나라 환자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합니다.

일부 부정적인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썩 괜찮은 법안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내일은 태양의 서커스를 보러 갈 계획입니다.

얼마 전에는 미슐랭 식당도 생전 처음 경험해보았습니다.

멋진 카페에도 가고, 죽어라 힘을 내서 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다시 검토해 보고 또 수정해 보고 그러면서

여전히 저의 삶은 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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