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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슬로덱스'라는 동아줄에 매달리기

(유방암 4기, Life goes on 8)

by 우유강

유방암 투병과 관련된 지난 글을 쓴 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거의 매주 병원에 갔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폐에 찬 물을 감시하기 위한 X-ray촬영과 혈액검사 말고는 없었지만 담당 선생님은 거의 매주 저의 상태를 관찰하고 계셨어요.

열은 여전히 자주 났었고 그때마다 타이레놀을 기침억제 진통제와 함께 먹었고 그러면 다행히 온몸에 땀이 쭉 나면서 열이 내리곤 했습니다.


아피니토는 중단된 상태로 항호르몬제인 아로마신 1알, 칼슘과 비타민D 보충제인 칼디 3 1알, B형 간염 보균 때문에 장기복용하고 있는 비리어드 1알, 혈압약(트윈스타 40/5, 1/2정) 그리고 진통제 매일 3알이 일용한 약입니다.


그리고 9/10일에 담당선생님께서 티루캡에 대해 조심스레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그런데 가슴뼈 통증에 대해 말씀드리자 심장초음파를 해보자고 하셨죠.

본병원이 스케줄이 밀리니 외부에서 찍어 1주일 뒤에 보고 결정하자고 하셨습니다.

제가 둔해서 그런지 가슴이 아픈데 이게 뼈가 아픈 건지 근육이 아픈 건지 신경통인 건지 구분을 잘 못한다는 거죠. ㅋ~

9/12일에는 외부협진의뢰서로 예약한 서대문구에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심장전문내과에 가서 아주 칼라풀한 심장초음파를 봤답니다. 심장판막이 나풀거리는 김치싸대기처럼 아주 바쁘게 심방과 심실 사이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도 보고 태아심장 소리 이후로 제 심장 소리를 아주 리얼하게 듣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바로 본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다급한 진료의뢰서를 다시 역으로 받아 들었습니다.

심장에 물이 찼는데 그 물이 심장을 누르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라는 말씀이었죠...


조금 좋아지고 있는 상태라고 믿었는데 이 무슨...

본병원 응급실은 죽을 지경처럼 보이지 않으면 응급실 처치도 쉽지 않을뿐더러 입원실로 가는 데도 이틀 이상 걸린다고 해서 아무리 열이 나도 응급실은 안 가는데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하여간 멀쩡하게(물론 병자모드이긴 합니다만) 걸어 들어가서 어찌어찌 급하게 환자분류되어 당일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동용 x-ray 기로 촬영한 결과나 다시 본 심장초음파 결과 자칫 심장 물을 뽑다간 바늘이 심장을 찌를 정도라 물이 더 빵빵하게 차기 전에는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었어요.


결국 아무 처치도 못하고 그냥 멀쩡히 걸어서 들어간 응급실 멀쩡히 걸어서 나왔으니 얼마나 행운이냐며

저는 룰루랄라 했고. 놀래서 부랴부랴 회사에서 조퇴하고 찾아온 아들(특별한 일 없으면 나 혼자 다 해치우리라 다짐했건만 응급실에는 보호자 1인이 상주해야 하는 내부규정이 있었음.)과 비 내리는 밤 닭개장에 파전만 맛있게 먹고 귀가했습니다.


17일에 다시 담당 선생님을 뵈었고 티루캡은 하지 않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젤루다도 권하셨고

임상 자리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알아보자고 전화도 두 군데인가 걸어보셨습니다.

바삐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아 보시는 담당 선생님의 안타깝고 답답해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너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갑자기 미쿡인 정서에 빙의된 듯 감동해서 마음 속으로 ssooo~ beautiful!!

그리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임상은 당연히 (b형 간염뿐 아니라 폐와 심장에 물이 차 있는 아주 나쁜 조건이라 임상대상으로 정말 파이겠죠) 빠꾸!! 당했습니다.


결국 아로마신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예상했던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였던 항호르몬 요법만 쓰는 것을 권하셨습니다.

종양들이 점점 더 커져서 아로마신도 효과가 없는 걸로 나왔으니 이제 중단하는 것이 맞다고 하십니다.


남은 항호르몬 요법은 파슬로덱스(풀베스트란트) 주사입니다.

이주에 한 번씩 근육주사 두방을 이 회에 걸쳐 맞고 그다음은 한 달에 한번 주사입니다.


제게 남은 동아줄이 파슬로덱스 하나인 건가요? ㅎ~


그나저나 아피니토한테 하도 씨게 얻어맞아서 온몸에 물이 잔뜩 고여있나 봅니다.

젊어서도 여기저기 물혹이 많이 생겨서 잔잔한 수술을 몇 번 했었습니다.

7년쯤 전에는 췌장에 물혹이 있다고 해서 비행기 타고 제주에서 서울 다니면서 관리했었고요.

사주에도 물이 많다고 했는데

그래서 물가에서 사는 게 너무너무 좋았었는데

살다 보니 꼭 물가에서 살더라니 했는데...

놀러 다녀도 꼭 강가나 바닷가, 호숫가를 찾았는데...

올해는 강남에도 물이 안 차는데

제게는 여전히 물의 나날인가 봅니다.

폐에도 물이 차고 심장에도 물이 차고....

이 정도 되면 물의 여신이라고 혼자 장구치고 북 치면서 투덜거려 봅니다.


파슬로덱스 주사를 아주 뻐근하게 맞고 다리가 뻐근해서 궁궐이고 인사동이고 돌아다닐 꿈은 다 접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택시로만 왕복하던 병원을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올 정도로 많이 좋아져서 기분은 좋답니다. 항암제를 끊은 덕분인 것 같아요.


그 한 달 동안 진통제 적응 하느라 비몽사몽 하는 중에 그래도 연재하던 소설 [미리의 시간]을 완결했으니 제 자신 엄청 칭찬합니다.

한 번씩 되돌려 읽어보니 맞춤법도 엉망이고 글도 엉망입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주어질 때 어설퍼도 조그맣게 출판이라도 하고 싶답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출판이 가능한 환상적인 마법의 세상이니까요.

손을 많이 봐야겠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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