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4기(Life Goes on7)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상황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또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평범한 어느 엄마, 그리고 여느 교사들과 똑같이 "공부해라! 좀 더 해라!"를 노래 불렀었다.
시험기간 만에라도 교과서랑 프린트물들, 참고서라도 열심히 들여다보게 하려고 온갖 전략전술을 다 구사하곤 했다..
당근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왜 공부해야 하나 따위의 신박하지 않은 질문을 거의 안 하지만 그래도 내 평생 2명 정도의 학생이 물었던 것 같다.
"쌔앰!! 공부는 왜 해요? 엄마가 그러는데 공부 잘해야만 잘 사는 건 아니래요. 공부 잘하면 월급쟁이 되고 공부 못하는 애들이 나중에 사업도 하고 장사도 해서 부자 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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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공부 잘해야 부자 되고 그러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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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뭐든 열심히 좀 배우고 익히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지지. "
"어쩔 수 없어서 '뭔가'를 하는 것하고, 많은 선택지 중에 '그걸' 선택해서 하는 것은 심오한 차이가 있거든, "
아이들은 '심오한 차이'라는 조금 추상적인 표현에 집중한다.
추상적인 표현보다 사실은 조금 어려운 학술적 용어나 철학 용어 들을 한두 개씩 사용하면
중학교1학년 꼬맹이들이라도 초집중하는 때가 종종 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이 뛰어나고 우리가 성장하던 시기보다 지적 환경이 말할 수 없이 풍부해져 있으므로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수준별 이해가 가능하도록 직관적 예를 인용하기도 한다.
개그맨 명수 옹의 명언 중에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한다!라는 그 비스므레한 말을 예로 들어주기도 한다.
어쨌든 "공부"와 "선택"이라는 단어를 연관 지어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그때 나는 알고 말 했을까, 모르고 말했을까?
일주일만 더 복용해 보기로 했던 아피니토는 바람과 다르게 아주 빠르게 열과 기침을 다시 가져왔다.
얼음 냉찜질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피니토를 절반으로 잘라서 복용했지만 소용없었다.
얻어왔던 시간 일주일 중 3일을 감량복용으로 버텨보다 4일째부터는 아피니토를 포기했다.
기어이 응급실을 가거나 재입원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림프종이 있는 왼쪽 팔은 도라에몽 주먹처럼 빵빵하게 부어올랐고 오른손도 부어서 초딩 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거의 평생을 물가 근처에서(우물동네, 하천변, 호숫가, 바닷가)에서 살다가
서울 도심 한복판 산아랫동네에서 1년 반을 살다 보니 물가가 그리워져서 북한강이든 남한강이든 강가에 놀러 가자고 했더니 아들이 바로 연차를 내고 양평 1박을 추진했다.
호수 같은 강가에서 산책도 하고 강물을 내려다보며 편안한 1박을 하며 맛있는 맛집 순례도 하며 보낸 시간 뒤에는 하루 세알 꼬박 복용한 인산염코데인 성분의 진통제가 있었다.
13일 진료
아피니토 복용 상황을 들은 담당의사 선생님은 역시 말이 적어졌다.
결국 온갖 부작용을 선물하던 아피니토는 폐렴 때문에 최종 중단이 선언되었다.
남은 표적치료제는
없다.
빅 5 병원인데......
여기가 그렇다면 다른 곳이라고 다를리 없다.
보통 두세 달에 한 번은 CT도 찍었는데 언제부터인가 CT촬영도 사라지고 Xray촬영하고 혈액검사만 한다.
혈액검사는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절대호중구값이 정상범위에서 갑자기 후룩 떨어지고, 간기능 검사도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염증수치는 계속 안 좋지만 그렇다고 위급한 상황도 아니다.
항호르몬제와 칼슘보충제, 진통제와 가글제를 2주 치 처방받아왔다.
2주 후 항암 고려해 보자고 하셔서 혹시 어떤...? 하고 여쭤보니 역시나 세포독성항암을 말한다.
운이 좋으면 간염보균자도 가능한 임상이 있는지 기다려보자고...
세포독성항암이라는 선택지는 (O, X) 나 다름없다.
계속 항암을 끊을 것인가? 아니면 암증상증후군보다 더 무섭다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항암제를 쓰던가이다.
물론 세포독성 항암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을 delete 해주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줄기세포를 자극해서 더 왕성하게 키워준다는 카더라 보고서도 있다.
세포독성항암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공포심 때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쓸 수 있는 약의 복용량을 못 채우고 감량해도 끝까지 못버티는 조금 모자란 체력과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젊었을 때부터 알고 있어서다.
다사다난한 병력이 있다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내몸의 특성이 있기 마련이라 그렇다.
방광암이 발생해서 수술, 항암, 일상복귀 후 재발, 항암, 전이 등을 거쳐 최근에 임상하러 갔던 모 병원에서 임상 대신 세포독성 항암 치료를 받고 부작용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요양병원 동지인 언니는 잔여수명 1년을 전해 듣고 잔뜩 약이 올랐지만 지금은 거의 폐기된 임상 1상이라도 해볼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정 많고 바지런하기 그지없고 주위 챙기느라 두 배, 세배 더 고생해도 즐거워하는 언니는 치료를 포기할 분이 아니다.
다들 자신이 감당할만큼 감당하며 버티고 있다.
6종 복합면역 치료(iNKT)와 집중 정밀 방사선치료 같은 효과적인 일본 암치료도 있다고 해서 검색도 해보고 열심히 알아봤지만 치료비만 2주 1회에 3,600만 원(총 12회), 혹은 1억 넘는 지정치료비 등을 코디를 맡은 회사에서 요구한다고 한다. 왕복 비행기요금, 숙박비 등은 별도다.
역시 선택의 문제다.
선택가능 여부도, 선택 가능한 방법의 갯수가 어느정도냐도 문제지만
병을 바라보는 개인적 삶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나는 온몸과 마음이 자연치료(항암제 없이 그냥 지내기, 항호르몬제와 진통제의 도움을 좀 받으면서 마음 같으면 시골에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흙 밟고 하늘 보면서 살기)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생각뿐이다.
2주 동안 나는 여전히 병원과 의사의 도움에 의지하고 지낼 것이고
항암을 거부하더라도 병원과 의사의 도움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요즘 가까운 한의원에서 온열순환치료라는 걸 받고 있다.
여성전문 한의원이고 호르몬 양성 유방암이 원발암이기에 손발 붓기도 가라앉힐 겸 온열치료와 침, 전기뜸, 부항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꿈도 못 꾸던 피부마사지도 동네 골목 피부관리실에서 받아본다.
가끔 카페에도 다시 들러 커피도 마시고 책도 들여다보고 싶다.
여전히 삶은 지속된다.
선택의 여지가 있든없든 아무리 힘들어도
또 하루가 돌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노래 가사와 다르게 누군가의 손을 잡고 미래로 달아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지금 현재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