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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중 폐렴, 흉수. 아피니토 중단 다시 복용

유방암 4기(Life Goes on 6)

by 우유강


우리는 매 순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을 떠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태양계 행성들은, 은하 중심을 축으로 매초 220km로 질주하며 공전하는 태양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팔꽃 덩굴손처럼 빙글빙글 감아도는 궤도를 그리며 헐레벌떡 날아갑니다.

지구 역시 매초 220km의 태양의 속도에 매초 30km를 덧붙여가며 질세라 빙글빙글 돌며 질주합니다.

게다가 어디 한 군데 의지할 곳 없는 거의 텅 빈 우주에서, 쓰러지지 않으려는 팽이처럼 흔들흔들 열심히 자전도 해야 합니다.

자전속도는 적도를 기준을 매초 460m(37° 위도 기준 매초 350m)로 돌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돌지 않고는 못 배기는 우주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쯤의 위도에 사는 우리는 매초 250km의 질주 속에서 30km를 또 그 속에서 매초 350m의 속도로 거의 미친 듯한 속도로 돌고 돌면서 우주를 쾌속질주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지요.


좌표가 있을 리 없는 팽창하는 우주에 기어이 좌표 만들어서 우주지도를 그려내는 인류지만

우주의 그 무엇도 잠시도 머무르지 못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971년에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립암법'을 제정하면서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암과의 전쟁 그 끝은 아직도 안개 속이다.



암은 남녀노소, 인종과 신분, 누가 뭐라고 해도 생활습관과 때로는 식습관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는 것을 암의 세계에 발을 들여보니 알 거 같았다.

암을 유발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고 그걸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뭔가 알 수 없는 존재의' 테러 같다는 느낌도 든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쫌 사는 나라에서는 건강검진을 통해서 더 높은 발암률 상승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항암제의 새로운 출현은 주식시장의 제약업계 주가를 출렁이게 한다.



호르몬 양성에 Her2음성 유방암에서 가장 최신 약제로 각광받던 티루캡(성분명 카피바서팁: 2023년 미국 FDA 승인, 국내 2024년 9월 출시, 비급여, 항호르몬제 풀베스트란트와 병용 시 월 1500만 원가량의 치료비)이 항암의 길 위에서 갈 곳 몰라 방황하던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어줬지만 이후 진행된 적응증 확장 임상에서 유의미한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고 판매량도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티루캡은 사실 치료과정 중 반복되는 부작용으로 항암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 마지막 카드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라 최근의 여러 발표들은 현재의 내 상태로선 조금 실망스러운 내용이다.



아피니토 복용을 중지해야 했던 부작용: 폐렴이 왔다.



아피니토(표적항암제 경구용)와 아로마신(항호르몬제 경구용) 8주 복용 동안의 부작용은 온몸에 찾아온 피부염과 구내염, 혈당 상승(경계성 당뇨 수준), 손끝 발끝이 툭하면 짓물러짐(젖은 황톳길 어씽 스톱), 식욕부진, 몸살기 같은 전신통증 등이었다.


아피니토를 복용한 후 전이암인 폐종양은 좀 더 커지고 많아지고 유방암과 겨드랑이 림프암의 사이즈는 좀 작아지고 해서 또이또이 쎄임쎄임이라며 긍정적으로 파이팅을 외치던 8주 차 진료를 끝내고 한 달 후에 보자고 했는데......


담당의사를 만나려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밤마다 미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본 체온이 37.4°C 였고 조금 더 올라가서 온몸이 따끈따끈하면 37.8°C.

미열을 잠재우는 건 쉽다.

타이레놀 500mg 1알 섭취 후 그래도 안 내리면 한두 시간 후 한 알 더 먹으면 정상체온으로 되돌아오니 체온 조절만 하면 되나 했었다.



워낙 온몸에 피부염과 생인손을 달고 지내니 그래서 염증에 의한 열이려니 했다.


3주 정도를 미열에 시달리다 고속버스를 타고 논산과 서울을 왕복할 일이 있었는데 그 후 기침이 시작되었다.

에어컨이 에지간히 세야말이지.


열은 타이레놀로 감출 수 있지만 기침을 감출 수는 없어서 논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음성.


x-ray촬영해 보자는 걸 일주일 있다가 서울서 또 진료가 있으니 그때 찍겠다고 하니 폐렴 등에 광범위하게 적응하는 항생제와 기침약 시럽을 처방해 주었다.

숨소리가 너무 지저분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른 것이었다.



고대하던 한달만의 병원진료 직전에는 미열이 아니라 고열과 숨쉬기 힘들 만큼의 기침이 시작되었다.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와 대화자체가 불가능했다.


담당의사는 바로 입원예약하라고 한다.

응급실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고 하고....



x-ray에 보이는 폐는 양쪽이 아래 1/3 또는 1/4 정도가 뿌옇다.



CT 의무기록 사본을 보니 경화성변화가 보이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검출(객담검사)은 안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쪽 폐렴일 약간의 가능성 또는 거의 약물에 기인하는 폐렴으로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의학은 과학 중에서도 거의 99.999% 확률에 기반하는 학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환자들은 100만 가지(그만큼 많은)의 서로 다른 변수들을 높고 낮은 확률로 교차해 가며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용하는 약제도 확률에 의거하여 승인받고 출시되어 사용된다.



깡촌에서 교사로 근무할 때 담배를 너무 일찍 배워버린 아이들을 금연시켜볼까 하고 네 명의 남학생들을 데리고 내과를 간 적이 있었다. 모두 x-ray를 찍게 했더니 건강하고 어린 녀석들의 폐는 아직은 너무 맑아서 겁을 줄 수가 없었는데 그중 한 녀석의 폐가 좁고 긴 모양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너는 뛰면 숨이 차고 조금만 힘들어도 헉헉거리지? '라고 여쭤보니 그 녀석 얼굴이 진지해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한다.

의사 선생님도 녀석들을 끌고 온 나의 속 마음을 이미 간파한 듯 그 녀석이라도 건져보자고 마음먹은 듯, 폐의 형태 때문에 숨이 차는 심한 운동을 하면 안 되고 특히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는걸 속으로 달가워했었다.

적어도 25%의 확률(네 녀석 중 한 녀석)로 한 녀석만큼은 확실하게 금연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확률이란 거의 만병통치약같은 진정효과를 갖는다.

어디로든 어떻게든 적용할수도 빠져나갈수도 있다.

그래 너! 확률!! 난 너를 내 인생의 중요한 핵심 키워드로 삼겠다고 마음 먹은게 이십년쯤 되었나...



암환자가 되고 나서의 나의 마음가짐 중 하나: 모든 것은 확률이니 어떤 부작용이 와도 그저 그러려니 할 것!



폐렴이 항암제 부작용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우선 아피니토와 아로마신 복용은 중단하기로 했다.


2주간의 대기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 담당의사는 바로 협진의뢰센터로 연결해 준다.



협진의료센터에서는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내과 (혈액종양 전문의)로 연결해 줬고 당일 바로 입원이 가능했다.

협진병원에서도 처음 일주일은 내내 열과 기침에 시달렸고 혈관은 자주 터지고 해열제와 항생제 바늘 꽂을 자리가 점점 없어져갔다.

왼쪽 팔은 림프절 종양 때문에 원래 퉁퉁 부어서 바늘을 꽂을 수도 없으니 오른팔 혈관이 대신 온통 바늘구멍 투성이에 퍼렇게 멍들어간다.



일주일을 꼬박 고생하니 기침도 좀 가라앉고 열도 좀 내린다.

협진병원은 외래병원 진료(진료 외 CT나 X-ray 촬영 등 포함)가 있으면 퇴원해야 한다.

퇴원하기 직전날은 해열제 주사제를 2개나 맞았는데도 38°C까지 체온이 올라가고 상태가 나빴는데

집에 돌아가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끙끙거리며 네다섯 시간하고 마약성 진통제(코데인인산염수화물)를 먹고 잤더니

밤새 기침도 안 하고 잠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체온도 36.7°C정상이다.

거의 한 달만의 정상체온이다. 해열제 없이......



12일 정도의 입원과 퇴원 재입원 후에 다시 본병원에 가니 본병원 입원은 안 해도 되겠다며 입원예약을 취소시킨다.

한 달 전에 약간의 복수가 있었고 간수치도 점점 나빠졌었는데 간수치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CT에서는 여전히 약간의 흉수(횡격막 침출수)가 있다고 나온다.

흉수는 폐렴의 부산물. 폐암의 전리품

흉수 때문인지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 누워 야만 기침을 덜 하므로 두 달 가까이 똑바로 누워 잘 수가 없다.

7월 30일 여전히 흉수도 있지만 척추를 통해 뺄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 한시름 놓아본다.



나의 가장 큰 고민: 이제 어떤 치료제가 있는 걸까?



의무기록 사본에서는 치료병기에 대해 #1, #2로 스테이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는데 나는 이미 아피니토, 아로마신이 #3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키스탈리 복용이 하루 3알(#1)이 정량이었는데 호중구가 지나치게 떨어져서 양을 2알로 줄였고(#2), 내성이 생겨 아피니토로 바꾼 게 #3에 해당되는 거였다.


#4를 hold 시킨 상태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1세대 세포독성 항암제를 쓰거나 이미 고비용인데 저효율이 되어버린 티루캡을 쓰는게 아닐까 유추되었고 어쨌든 두 가지 다 썩 내키지 않는 것이라서 고민이 되었다.


둘 다 거부한다면 어떤 답이 있을까...


급하게 생각이 많아졌던 시간들이었다.



7월 30일 담당의사는 아피니토를 계속 써보자고 한다.



오잉? 내성이 아니어서 잠시 쉰 것은 괜찮은 듯하다.

그런 답은 미처 생각 못 해봤다.

오호~~ (속으로는 끼야아아아오호!!!)



기운도 여전히 없고 연일 37,8°C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 쓰고 에어컨을 피해 당분간은 택시만 타고 다녀야 하는 신세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그 와중에 밀린 숙제를 하였다.

연명치료중단 등록 완료.



작년부터 저거 언제 등록하나 언제 등록하나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절차가

전화로 예약상담, 보호자 동반 상담.

그러니 아들 연차 내서 저거 상담하러 가자고 하기 번잡해서 미루었던 일.

마음이 급해져서 전화하니 신청자가 많아져서 구 보건소나 구 노인복지센터에서도 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보호자 동반도 없어졌다고.

집 바로 앞에 있는 구 노인복지센터에서 10분도 안 걸려서 등록이 가능했다.

하~~ 미루던 숙제까지 마쳤으니 개운.



폐렴의 후유증인지 열은 사라졌는데 여전히 대화를 할 수가 없다.

말만 하면 기침이 나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으란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자려고 누우면 기침 터져서 괴로움.

좋아하는 카페, 외출, 맨발걷기를 못해서 힝구~가 되었다.

모든 외부활동은 올 스톱.

이번에 아들도 마음 고생 했고

우리 집 강아지들 우유와 밀크도 기침만 하면 옆에 쫓아와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다.

산책집사인 아들껌딱지인 녀석들이 심하게 아파 보이니 밥집사 엄마 곁에 머무는 것도 신기하고 딸내미 우유는 지금도 내 옆에만 붙어있다.

하지만 완성시키지 못한 브런치 소설(미리의 시간)을 마저 쓸 수 있을 시간이 보여서 기쁘다.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암과의 전쟁은

미지의 우주로 나가는 끝없는 질주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될 듯 도달할 듯 꽈배기처럼 돌면서도 한 번도 머무른 적 없이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암투병뿐이랴.

사는 모든 순간이 한 번도, 단 한 번도 똑같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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