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데가 있거든요.”
먹는 브런치가 아니라 글 쓰는 플랫폼이랬다. 2019년 대학생일 때였다. 프로젝트 일환으로 소규모 기업 대표님과 미팅 중이었다. 그곳에서 글 콘텐츠를 운영 중이라고 자랑스러워하셨다. 당시에는 무안하지 않을 정도로만 호응했다. 심사가 까다롭나 보군요. 꽤 전문적인 사이트인가 봐요.
그 뒤로 자료조사를 할 때 종종 브런치를 접했다. 지금은 브런치스토리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이 공간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름은 한동안 잊고 지냈다. 내 인생에 글 쓸 일은 없다고 여겼다. 어릴 적부터 그려온 그림이나 전공인 디자인으로 비범하게 먹고살 것이라 다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좋아하던 일에 마음이 식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졸업 후 실무를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으로 그만하고 싶었다. 싫증을 자각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한 우물을 오래 파왔다는 자부심을 놓고 싶지 않았기에 2년은 억지로 버텼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꿈을 잃었다. 싫어졌다는 걸 인정한 다음엔 꽤 곤욕이었다. 더 이상 되고 싶은 모습을 선명히 말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림과 디자인을 아꼈을 땐 대체 무슨 마음가짐이었을까. 궁금했다. 그 비밀이라도 알면 새로운 꿈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먼지가 낀 6년 전 일기를 펼쳤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꿈이 있던 시절. 그렇게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달리 일기에는 이런 목소리가 잉크에 눌려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하고 싶은 걸 뒤로 미뤄야 할까.“
다른 이들을 따라서, 미래가 선명해 보이는 이들을 따라 성실했던 시간이 적혀있었다. 그것의 끝은 언제쯤 다가오는 건지 막막해했다. 기억과 다른 기록에 당황스러운 찰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잊고 있던 게 기억났다. 왜 그림이나 디자인에 푹 빠졌었는지. 그 속에 담긴 무언가를 읽었다. 멈춰있지만 움직이고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꿈틀거리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게 즐거웠다. 직접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제껏 그걸 꾸리고 담을 그릇이 그림밖에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당연한 가능성을 말이다.
‘브런치라는 데가 있거든요.’
오래전에 들었던 짤막한 말이 스쳐갔다. 오래간만에 사이트를 방문했다. 상단에 ‘작가 신청하기’ 버튼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검색창에 심사 통과 후기를 검색해 보았다. 다시 닫았다. 누군가의 조언에 따르기보다는 쓰고 싶은 대로 솔직하게 써보려 했다.
제출 후 이틀이 지났다. 잠잠한 핸드폰에 진동이 잇달아 울렸다. 작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을 잃은 이후, 아직도 새로운 목표는 무엇일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만약 한 단어로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
문장 하나에 잊고 있던 생각이 건드려지고, 억지로 묻어둔 마음이 흔들리며, 그 작은 낱말들이 누군가의 세상에 쌓이면 꿈이 되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모든 것을 정제된 활자에 곱게 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랜 일기에서 비롯되어 발 디딘 브런치스토리.
잊고있던 문장을 다시 새긴 곳.
나는 이곳에서, 작가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