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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애마

by 마리온

*스포일러 있습니다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한국을 휩쓴 에로 영화 ‘애마부인’을 소재로 전두환 정권의 문화 탄압과 당시 영화계의 부조리를 픽션 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애마>의 핵심은 80년대 영화 산업의 재현과 재해석에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정치적 억압과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3S’ 정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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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엄격한 검열을 유지하며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3S와 검열 사이의 모순 속에서, 에로영화의 붐이 일어나게 된다. ‘애마부인’은 본격적으로 에로영화 붐을 일으킨 중심에 있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그렇다면 왜 ‘애마부인’을 2025년에 다시 가져왔을까?


2025년에 애마부인을 소재로 가져온 이유는 그 상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마부인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 제목을 알 정도로, 여성의 성을 소비하는 남성적 시선을 담은 키워드였다. 그러나 사실 원작 ‘애마부인’은 여성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파격적이고 진일보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결국에는 남성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양가성 자체로 현시대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읽히기에 충분한 지점이었다.


시리즈 <애마>는 원작 ‘애마부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상징성과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가져와 비틀어낸다. 전반부는 시대상의 재현에 가깝다. 그 중심에는 톱스타 정희란 (이하늬)이 있다. 신성영화사에 부조리한 계약으로 몸이 묶여 있는 희란은 더 이상 노출 영화를 찍고 싶지 않지만, 영화사의 압박으로 ‘애마부인’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희란은 주연으로 발탁된 신주애(방효린)와는 끊임없이 충돌하며 서로를 ‘썅년’이라 부른다. 사실 이들을 ‘썅년’으로 만든 ‘썅놈’들은 따로 있다. 희란이 강제로 애마부인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는 신성영화사 대표 구중호 (진선규)가 있고, 성접대를 주문한 고위층 간부들이 있다. 그런 거대한 ‘썅놈’들의 카르텔 안에서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끝내 ‘썅년’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후반에 들어서면서 시리즈는 시대상을 재현하는 단계에서 재해석하는 단계로 옮겨간다. 성상납 연회에서 마주한 희란과 주애는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깨닫고, 이후 여성 연대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비록 남성의 시선에서 난도질당한 ‘애마부인’ 영화는 그대로 스크린에 내걸려 흥행하게 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시작된다. 애마부인의 흥행으로 대종상 시상식에 오르게 된 주애와 희란. 주애는 본인을 둘러싼 저질스러운 루머에 맞서 당당히 ‘말’을 타고 시상식에 등장한다. 희란은 정부의 여배우 성상납 관행과 부정 계약 등의 진실을 폭로한다. 폭로 후 남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희란을 주애가 말 위에 태워 구해내는 장면은 원작에서 대상화되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픽션코미디’의 장르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작중 배우가 되려는 욕망으로 성접대도 주저하지 않았던 캐릭터 ‘미나’의 죽음은, 어쩌면 당시 현실 속 많은 여성들이 겪은 비극이었을 테다. 그러나 작품은 픽션이라는 장치를 활용하여 통쾌하게 이 현실을 비틀며 부조리했던 과거 시대에 대한 위로를 건넨다. 동시에 애마부인이 지니고 있는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지워낸다.


‘애마’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과정이 아주 인상 깊었다. 많은 이들에게 나체로 말을 타는 씬으로 기억된 ‘애마부인’에서 나아가 여성들을 희생시키는 영화 산업을 응징하는 여배우들이 말을 타고 광화문을 활보하는 ‘애마부인’으로 새롭게 써내려 갔다. 작품을 다 본 후, 이 시리즈 덕분에 앞으로 ‘애마부인’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희화화되는 단어가 아니게 되었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엿같은 일 투성이일 거다. 부당한 순간은 언제든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속도로. 누군가는 희란의 방식처럼 멋있게 대항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꼭 정답은 아니다.


시리즈 속 ‘애마부인’은 결국 제작사의 입맛에 맛게 ‘형편없이’ 개봉되었지만, 연출 곽인우 (조현철)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여성들의 연대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서사 ‘애마부인’이 오리지날레 영화로 개봉할 것임을 암시하며 변화하는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우처럼 수없이 지고 타협하더라도, 마침내 오리지날레 영화를 개봉시켜 내듯,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애마>는 그렇게 애마부인을 새롭게 써내며 관객에게 말한다. 계속해서 싸울 때 언젠가는 진짜 이야기가 스크린에 오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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