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성장기-3부5장
알프스에서 마주한 나의 오래된 습관
네덜란드에 사는 동안 나름 럭셔리한 경험을 꼽으라면 단연 자동차를 타고 떠난 알프스 스키 여행입니다. 남편이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죠. 중고등학생인 두 아들은 한참 운동신경이 발달할 때라 물 만난 고기처럼 설원을 누볐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웅장한 알프스 산맥 앞에서 제가 느낀 것은 감탄보다 '공포'였습니다.
다리가 부러지면 어쩌나,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선뜻 스키 플레이트 위에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런 '몸 사리기'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운동에 둔한 오래된 습관이었습니다. 결국 남편과 겨우 눈썰매를 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죠.(남편은 아내가 스키를 타지 못하니 할 수 없이 썰매를 같이 타야했죠) 누군가는 눈을 가르며 내려오는 스릴에 환호하지만, 누군가는 그 눈밭에서 떨며 멈춰 서기도 합니다. 알프스의 절경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몸 쓰는 일에는 소극적인 '과거의 나'를 발견했습니다.
『신의 물방울』을 따라간 부르고뉴 와이너리
두 번째 인상적인 체험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포도밭 여행입니다.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목동과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인『마지막 수업』의 배경, 알자스 로렌 지방이 부르고뉴와 가깝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지적 호기심은 이미 발동했습니다. 여기에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불을 지폈죠. 만화 특유의 과도한 허세와 닭살 돋는 수식어들에 짐짓 낚인 척하며, 세계 최고의 와인 '로마네 콩띠'의 고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여행에는 전략적인 목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임원이었던 남편에게 와인 지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회사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은 서양 상류 문화의 정수인 와인 대화에 막힘이 없어야 했죠. 그런 박학다식함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아내인 제가 먼저 공부하고 체험해서 남편에게 전수하는 '지적 내조'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로테르담에서 부르고뉴까지 7시간을 직접 운전해 달려간 보람은 충분했습니다. 지도를 보며 유명 와이너리를 찾아다니고, 프랑스 시골 포도밭을 배경으로 2시간 동안 여유롭게 즐긴 프랑스식 점심은 잊을 수 없는 미식의 정점이었습니다. 남편은 이 여행 덕분에 이후 고객 접대 자리에서 직접 경험한 풍성한 '썰'을 풀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을 갖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갯벌에서 터진 '삼천포 소녀'의 본능
마지막은 네덜란드의 갯벌 여행입니다. 갯벌은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이는' 세계입니다. 공룡 발자국이 있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란 덕분에 저는 어릴 때부터 바지락, 전복, 고둥을 채취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물때를 맞추는 감각은 제 세포 속에 각인되어 있었죠.
그 본능이 네덜란드 바닷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꼬막처럼 생긴 바지락을 바구니 가득 캐고, 새우와 꽃게를 잡아 올렸습니다. 굴을 한가득 따와서 한국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죠. 낯선 이국의 바다였지만, 그곳에서 저는 가장 익숙한 '나'를 만났습니다.
경험에 경험을 덧댄다는 것의 기쁨
이 세 가지 체험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확장할 때 비로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알프스 스키는 저에게 낯선 두려움이었지만, 부르고뉴 여행은 책으로 접한 지식을 확인하는 즐거움이었고, 네덜란드 갯벌은 어릴 적 추억에 새로운 경험을 덧대는 환희였습니다.
나의 뿌리 위에 새로운 문화를 얹으며 성장했던 그 찬란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2010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여행자가 아닌, 다시 현실의 삶을 일궈야 하는 복귀였습니다.
오늘의 성찰 질문
Q1:당신이 새로운 환경(해외, 낯선 모임 등)에서 마주한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나의 오래된 습관'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억지로 고치려 했나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나요?
Q2:배우자나 소중한 사람의 성장을 위해 당신이 기꺼이 수행했던 '지적 내조' 혹은 '정서적 지원'은 무엇이었나요 그 과정에서 당신이 얻은 지식이나 성취감은 무엇이었는지 기록해 보세요.
Q3::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낯선 상황에서 빛을 발했던 '아는 만큼 보였던' 순간이 있었나요? 당신의 오랜 노하우가 발휘되었을 때 느꼈던 기쁨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세요.
3부. 평촌에서 대치동으로
#알프스스키 #와이너리 #와인박물관 #갯벌체험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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