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시칠리아에는 마피아가 없더라

나의 최애 여행지 시칠리아

by 남쪽나라 Mar 28. 2025

     

나는 아내와 2주간, 이번에는 혼자서 1주간씩 두 차례나 시칠리아를 찾았다.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아 아쉽기만 하다. 이른 아침 팔레르모를 떠나는 기차에서 아침 안개가 자욱한 해안가를 따라 펼쳐지는 바다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메시나 해협을 건너면서 페리 갑판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시칠리아섬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우리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진한 사람의 냄새, 오랜 역사와 특이한 문화의 향취, 아름다운 자연과 신화의 섬, 그리고 몇 가지 어이없던 해프닝들, 아마 그런 것들은 나의 남은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겠지? 겨우 2~3주간의 여행으로 어떻게 시칠리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칠리아에서는 혹독한 겨울을 같이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시칠리아 지도(사진출처 : 구글)

어쨌든 우리가 돌아본 시칠리아는 우리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풍요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지만 척박하고 지지리도 못 사는 그런 시칠리아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 직후나 아리랑의 시대가 아닌 것처럼. 지금의 시칠리아는 <'마부의 노래>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나오는 시대도 아니고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단골로 나오던 그런 무대도 아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의 전후 복구 사업과 특히 70~80년대의 고도성장으로 어느 정도 가난의 그림자를 벗어난 느낌이다. 북부에 비해서는 아직도 많이 낙후된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비교적 밝고 순박하다. 그리고 아직도 시골 인심이 많이 남아 있다. 치안도 별 문제없어 보인다.     


시칠리아의 마피아, 무서운 조직이고 지금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도 마피아라고 써 부치고 다니지 않는다. 어쩌면 시칠리아인 모두가 마피아인지도 모른다. 루이지 바르지니(Luigi Barzini)는 그의 책 <이탈리아인들>에서 시칠리아에는 두 종류의 마피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낮은 의미의 소문자 'mafia', 시칠리아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낮은 의미의 mafia이다. 시칠리아 인들만의 정신상태, 인생철학, 사회적 관념, 도덕규범, 특별한 감수성인 이 mafia 기질은 타고나거나 젖먹이 때부터 절로 터득하는 것이다. 즉, 서로 돕고, 친구의 편에 항상 서며, 비록 친구가 나쁘고 적이 옳을 경우라도 친구의 편이 되어 함께 싸우며,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위엄을 지키며, 아무리 작은 경멸이나 모욕도 그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고, 비밀은 절대 지키고, 공적 지배권력과 법은 조심한다. 이러한 기질들은 시칠리아인 모두가 공유하는 정서이고 원칙들이다. 이런 mafia 기질은 잦은 외침과 수많은 외세에 의해 지배 당하고 억압 당해 온 시칠리아인들의 슬픈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바르지니는 말한다.


다른 하나는 대문자 Mafia,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대부>에서 보는 유명한 불법 조직이다. 이 Mafia는 극히 일부이다. 그런데 이 대문자 Mafia는 관광객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자기들끼리 이해관계 다툼이 있을 때만 싸움질하고 총질한다. 시칠리아에 마피아가 무서워 못 간다는 것은 기우이다. 시칠리아보다 더 무서운 곳은 오히려 미국 아닐까? 시도 때도 없이 무고한 시민이나 어린애들을 향해 총질해 대는 곳. 


영문판 론리플라닛(Lonely Planet)은 '시칠리아는 양파 껍질과 같아서 벗겨도 벗겨도 새로이 볼 것이 나오는 숨은 보석이다'라고 했다. 이 숨은 보석 속을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걷고 민박하며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행하는 것, 이 또한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나의 아날로그식 시칠리아 여행기>는 이것으로 끝내고, 곧이어  이탈리아 중북부와 알프스 산골 여행을 담은 <나의 아날로그식 이탈리아 여행기 2>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18화 화산의 원조 불카노섬 - 사람들은 왜 화산에 열광할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