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와 함께 열린 대초콜릿의 시대
Bunny Brown씨는 1528년이 전 세계 초콜릿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콩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 (1485~1547)가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이후 스페인으로 귀국하면서 구세계(유럽)에 처음으로 초콜릿을 소개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코르테스는 금, 은 등과 함께 신대륙에서 가져 온 다양한 산물을 스페인 왕실에 헌납했는데, 그 때 멕시코 원주민들이 마시던 초콜릿 음료가 같이 전달되었고, 이후 전 유럽에 초콜릿을 마시는 문화가 서서히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초콜릿 chocolate 이라는 이름의 어원부터가 아즈텍 문명에서 '쓴 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초콜라틀xocolatl 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페인어에서 시작하여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거쳐 지금의 초콜릿 chocolate 이라는 단어로 확립되었습니다.
Bunny Brown씨는 초콜릿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약에 에르난 코르테스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의 초콜릿이 존재하지 못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코르테스를 직접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1528년,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떠나 세비야 항구에 막 도착하던 그 날로 시간 여행을 떠났습니다.
*콩키스타도르 Conquistador :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을 이르는 말
에르난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정복자로,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고 멕시코를 스페인 식민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 지역의 소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지만 관료가 되지 않고 1504년 신대륙으로 건너가 정복과 탐험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한동안은 쿠바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 총독 아래에서 활동하다가 1519년에는 본인이 직접 조직을 꾸려 멕시코 정복 원정을 떠났습니다.
1519년 코르테스는 멕시코에 상륙하여 토착민들과 동맹을 맺고 아즈텍 제국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는 군사 전략과 외교술을 활용해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하였고, 1521년 제국을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이후 그는 멕시코를 누에바 에스파냐 Nueva España 라는 이름의 스페인 식민지로 만들고, 자신은 총독이자 최고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의 그의 독단적이고 자율적인 행동이 스페인 왕실과 정적들의 의심을 샀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코르테스가 신대륙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경계했고,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총독의 권한을 제한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같은 정적들이 코르테스의 통치를 비난하며 왕실에 그를 고발했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과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스페인으로 가기로 결심했고, 아즈텍 정복 과정에서 확보한 금, 은, 보물, 카카오 등 신대륙의 부를 스페인으로 가져가 왕실에 헌납하며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1528년 스페인에 도착한 코르테스는 아즈텍 정복에 대한 왕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직접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 마르케스 델 바예 데 오악사카 Marqués del Valle de Oaxaca 라는 작위를 부여받았으나 멕시코 총독의 자리는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권력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1530년에 코르테스는 멕시코로 돌아갔지만, 이미 그의 권력은 왕실에 의해 제한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정치적 권한을 거의 상실하고 개인 농장과 은광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는데, 멕시코에서 자신이 정복한 영토와 자산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왕실과 법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541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코르테스는 은둔 생활을 하다 1547년 12월 2일 세비야 인근의 작은 도시 카스티예하 데 라 쿠에스타 Castilleja de la Cuesta 에서 사망했습니다. 사망 후 그의 유해는 여러 차례 이장을 거쳐 최종적으로 멕시코 시티에 있는 예수의 탄생 교회 Iglesia de Jesús Nazareno 에 안치되었습니다.
세비야는 스페인의 '황금 시대 (Siglo de Oro)'를 상징하는 중심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503년, 스페인 왕실이 세비야에 인디아스 관청(Casa de Contratación)을 설립했는데, 이 기관은 신대륙과의 모든 무역을 관리하는 기구로 세비야가 아메리카에서 오는 상품(금, 은, 향신료, 카카오 등)의 독점 항구로 지정되었습니다. 세비야는 신대륙에서 온 배가 처음 도착하는 도시였고, 유럽으로 나가는 물품들도 세비야를 통해 이동했습니다.
세비야는 16세기 스페인의 황금 시대 동안 중요한 예술과 문학의 중심지였습니다. 무역을 통해 유입된 부와 국제적 교류는 도시의 문화적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 세비야는 건축, 미술, 음악에서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도시에는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습니다.
그 중, 1401년에 착공하여 무려 127년에 걸친 공사 끝에 1528년에 완공된 세비야 대성당은 16세기 스페인의 종교적 상징이자 도시의 번영과 위엄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물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성당 중 하나로 신대륙 무역의 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과달키비르 강의 침적 문제로 인해 세비야에 대형 선박의 접근이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1717년, 스페인 왕실은 신대륙 무역의 중심지를 세비야에서 카디스(Cádiz)로 이전하면서 세비야의 중요성은 이후 점차 감소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과 유럽을 연결해 주었던 스페인의 Gateway, 세비야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는데, Bunny Brown씨는 세비야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아래의 6가지를 꼭 경험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초콜릿을 즐기는 주된 방식이 고형 초콜릿으로 변화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음료로 즐기는 방식이 지금까지도 유지되며 그들만의 독특한 식문화로 발전한 것이 길쭉한 모양으로 튀겨 낸 빵(츄러스)을 초콜릿에 찍어 먹는 문화입니다.
세비야에도 츄러스와 초콜릿을 판매하는 까페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Bunny Brown씨는 Bar El Comercio 바르 엘 코메르시오를 최고의 츄러스 맛집으로 추천합니다.
Bar El Comercio는 1904년에 설립되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비야의 전통 카페로, 세비야 현지인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매일 아침 신선하게 튀겨낸 츄러스와 진한 핫초콜릿으로 유명합니다. 세비야 대성당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 세비야 대성당 방문 동선에 추가하면 좋습니다.
[주소] Calle Lineros 9, 41004 Sevilla, Spain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explore/locations/1023601570/cafe-bar-el-comercio/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 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고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고딕 성당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역사적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은 15세기 초에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를 철거한 후 세워졌으며, 당시 "우리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웅장한 성당을 세우자"는 목표 아래 건축되었습니다. 대성당의 중심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높이 37m의 화려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성당의 지하 묘지에는 대항해 시대의 상징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의 유해가 잠들어 있습니다.
성당 안에는 스페인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네 사람이 상여를 메듯 콜럼버스의 빈 관을 메고 있는데, 이 관이 땅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네 사람이 어깨에 맨 채 공중에 떠 있는 이유는 신대륙의 통치와 부에 대한 이견으로 스페인 왕실과의 관계가 악화된 콜럼버스가 죽으면서 남긴 다음과 같은 유언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시신은 신대륙에 묻어라, 내가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게 하라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남미대륙을 떠돌며 쿠바에 있다가 1898년에 쿠바가 독립하자 그의 유골을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 왔습니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은 1928~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 Exposición Iberoamericana 를 위해 세비야 마리아 루이사 공원 Paseo de María Luisa 내부에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스페인의 부와 문화적 위대함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로 건설 되었습니다.
광장 중앙에는 운하가 흐르고 있으며 이를 가로지르는 네 개의 다리가 있는데, 각 다리는 스페인의 고대 왕국들을 상징합니다. 광장의 외벽은 48개의 스페인 지역을 대표하는 세라믹 타일 벤치로 장식되어 있고, 각 벤치는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표현하는 타일 작품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플라멩코는 춤, 음악, 그리고 노래로 구성된 독특한 예술 형식으로, 세비야가 있는 안달루시아 Andalucia 지방의 전통 문화에서 유래했습니다. 19세기에 세비야는 플라멩코 카페 콘시르토(Café Cantante, 플라멩코 공연장이자 카페)들이 활발히 운영되면서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하는 플라멩코의 중심지가 되었고, 플라멩코는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예술적,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세비야는 세계적인 플라멩코 공연장과 축제로 유명한데, 비엔날레 데 플라멩코 Bienal de Flamenco는 세비야에서 매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라멩코 축제로, 전 세계 플라멩코 애호가들이 참여합니다.
타파스의 어원은 '덮개'를 뜻하는 스페인어 타파 tapa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중세 시대 스페인 남부에서는 와인잔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빵이나 햄 조각으로 덮었던 것이 타파스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로 타파스가 처음 발전한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세비야의 음식 문화는 다양한 지역적 영향을 받으며 타파스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타파스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친구나 가족과 어울리며 작은 접시를 나누어 먹는 사교적인 활동입니다. 세비야의 타파스 바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세비야에서는 여러 타파스 바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타페오 Tapeo 라는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타파스를 통해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세비야는 이슬람 통치 시대와 기독교 왕국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도시로 발전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 플라멩코, 투우, 낭만적인 골목길과 같은 강렬하고 정열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 위대한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의 배경으로 세비야가 자주 선택되었습니다.
- 세빌리아의 이발사(The Barber of Seville) / 로시니
- 카르멘(Carmen) / 비제
- 돈 조반니(Don Giovanni) / 모짜르트
- 피델리오(Fidelio) / 베토벤
오페라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세비야에서 오페라 공연 자체를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페라의 배경이 된 세비야 대성당, 담배 공장(현 세비야 대학교) 등을 방문하는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Bunny Brown씨는 조언합니다.
"어이 귀 큰 양반, 저리 좀 비켜요." 시간 터널에서 막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비틀거리는 Bunny Brown씨에게 험상궃은 남자가 소리쳤습니다. 그제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그의 눈에 항구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들어왔습니다.
“코르테스가 돌아온다더군!” 항구에 모인 사람들이 수근거렸습니다. 노파들은 코르테스가 가져 왔다는 신대륙의 보물을 보려고 하고, 젊은 상인들은 그가 가져올 새로운 거래품을 기대하는 듯 보였습니다.
"배가 들어온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갤리온선이 안개를 뚫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선박의 돛은 해풍에 우렁차게 펄럭였고, 코르테스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돋보였습니다. 배에서 내린 코르테스는 바다의 피로에 지친 얼굴이었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은 주변의 모든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발을 내딛으며, 호기심과 경외가 뒤섞인 시민들의 시선을 마주했습니다.
“코르테스님! 정말로 신대륙의 황금을 가져오셨나요?” 한 상인이 소리치자 “황금도, 은도, 그리고 카카오도 있다네.” 코르테스는 피곤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그의 말에 군중은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환호 속에는 엇갈린 감정도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그의 성공에 찬사를 보냈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가 저지른 잔혹한 정복과 피비린내 나는 행적에 대한 불편함이 감돌았습니다.
Bunny Brown씨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은 “그가 신대륙에서 이룬 것은 기적이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의 야망 때문에 죽었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등을 돌리고 자리를 떴습니다. 그 때 마침, 코르테스가 마차를 타기 위해 Bunny Brown씨 앞을 지나쳐 갔습니다.
"코르테스님! 잠시만요!" Bunny Brown씨의 다급한 외침에 코르테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Bunny Brown씨는 인파를 헤치고 코르테스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신 걸 축하합니다, 코르테스님. 저는 Bunny Brown이라고 해요. 긴 여행에서 돌아 온 코르테스님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아주 먼 곳에서 찾아 왔답니다." Bunny Brown씨는 코르테스를 위해 만들어 온 초콜릿을 가방에서 꺼내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죠? 먹는 건가요?"
"네, 초콜릿이라는 건데, 당신을 위해 만들었어요."
"초콜릿? 제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초콜라틀과 이름이 비슷하군요."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문 코르테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오~ 이런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이렇게 귀한 걸 저에게 줘도 되나요?"
"그럼요. 세상 사람 누구나 초콜릿을 먹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정말 고맙습니다, Bunny Brown씨. 사실은 제가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많이 지치고 힘들었는데, 이 초콜릿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네요. 저는 지금 국왕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국왕과의 이야기가 잘 풀리면 다시 돌아와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께요. 어디에 묵고 있죠?"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곧 다시 떠나야 해서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올테니 그 때 뵈요. 계획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길 바랄께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Bunny Brown씨도 하시는 일 모두 잘 되고, 나중에 다시 만나면 우리 친구가 되기로 하죠."
코르테스는 Bunny Brown씨에게 악수를 청하고 나서 다시 걸음을 마차로 향했습니다. 더 이상 피곤하고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 없고,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찬 코르테스의 뒷모습을 보며 Bunny Brown씨는 그를 위해 만든 초콜릿에 이렇게 이름을 붙여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Conquist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