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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 밥상 Nov 27. 2024

팔색조, 효자 음식

그래, 오늘은 '비프롤 스테이크'다.

 거실 한 편에서 주황색 빛이 뻗어 나온다. 11월 첫날부터 설치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은은한 빛이 11월 마지막 주의 어둠을 따스하게 감싼다. 짙은 녹색의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펼쳐진 붉은 방울들이 한 해의 안부를 물어온다. 올 한 해도 후회 없이 잘 보냈는지.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다면 서둘러 붙잡으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마음 깊이 붙잡고 매달리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어서 놓아주라고 넌지시 말을 걸어온다. 분명 한 해를 시작할 때는 부푼 꿈을 안고 이번 해는 근사한 해를 맞이할 것이라 다짐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할 때는 저번 해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해로 끝마친다. 그래서 2024년을 한 달 남짓 남긴 오늘은 근사하면서도 소소한,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보려 한다.


 그래오늘은 비프롤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두툼한 고기를 굽기만 하면 되기에 얼핏 보면 단순한 요리 같다. 하지만 레어(rare), 미디엄(medium), 웰던(welldone) 등의 굽기 정도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복잡한 요리다. 쉬운 듯 어려운 음식이라 가정에서 해 먹기보다는 보통 레스토랑에서 사 먹는다. 가격도 평범하지 않아 특별한 날, 기념하는 날 또는 축하하는 날에 레스토랑을 찾아 스테이크를 먹는다. 하지만 비프롤 스테이크는 다르다. 명칭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요리법이 단순하여 가정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쇠고기 위에 치즈를 놓고 돌돌 말면 끝. 요리도 오븐이 알아서 해주니 이렇게 착한 요리가 또 있을까 싶다.



 [비프롤 스테이크]

 1. 불고기용 쇠고기를 길게 펼친다. 원하는 길이만큼 겹쳐서 펼치면 된다.

 2. (1)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길게 놓는다. (이때 슬라이스 형태의 모차렐라 치즈를 사용하면 편하다.)

 3. (2)를 돌돌 만다.

 4. 오븐 트레이에 종이 포일을 깔고,

    그 위에 (3)의 비프롤을 올린 후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을 뿌린다.

 5. 오븐(180도/3분 예열)에서 180도/20분 굽는다.

 6. 두께감 있게 갈아낸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얹고, 파마산 치즈와 파슬리 가루를 뿌린다. (생략 가능)



 짙은 고동색의 바깥쪽 면에서 느껴지는 바삭함과 옅은 갈색의 안쪽 면에서 느껴지는 촉촉함은 상반된 만큼 풍부한 식감을 선사한다. 쇠고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즙과 녹아 흐르는 모차렐라 치즈의 만남은 풍미 가득한 고소함을 자랑한다. 굵직한 두께의 그라나파다노 치즈까지 어우러지면 특유의 향이 더해져 여느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돌돌 말린 쇠고기를 한 겹씩 뜯어서 먹어도 좋고, 나이프로 썰어 먹어도 좋다. 단 한 방울의 육즙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입안에 가둘 수 있게 한 입에 먹어도 좋다. 집에서 내가 먹는데 무슨 교양이 필요하고, 격식이 필요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든, 손으로 먹든 먹기만 하면 된다. 외출복을 입든, 운동복을 입든, 잠옷을 입든 먹기만 하면 된다. 내 집에서 얼마든지 방식대로 편하게 즐기면 그만이다.


 비프롤 스테이크는 의외로 아침밥에 제격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미리 말아놓은 비프롤 스테이크를 오븐에 넣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 계란을 삶고(7분 20초, 반숙란이 딱이다), 사과를 깎으면 30분도 안 걸려 괜찮은 아침 밥상이 차려진다. 때로는 든든한 아침 한 끼로, 때로는 고급스러운 연말 음식으로. 그날그날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효자 음식이 바로 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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