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꽃게찜'이다.
오전 7시. 방 안이 어두컴컴하다. 가을이 지나가고 급격하게 날이 추워지면서 아침에 맑은 하늘을 마주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묵직하다. 하루 건너 비가 오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기 예보를 확인해 보니 눈 예보가 떠 있다. 그러고 보니 비가 올 때의 잿빛 하늘이 아니다. 하늘이 하얗다. 하얀 눈을 머금고 있어서 이토록 공기가 무거웠나 보다. 8시가 넘자 눈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얼마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소복소복 눈이 쌓인다. 올해의 첫눈을 이렇게 마주한다.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자 남다른 냉기가 몰아쳐 들어온다. 다급히 문을 닫고 보일러의 온도를 올린다. 뜨뜻한 방바닥에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창밖을 살핀다. 오전에 내리기 시작했던 첫눈은 잠시 흩날리다 조용히 사라졌다. 하얀 눈송이들과 함께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화려한 막이 올랐다. 처음,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기. 올해의 첫눈은 다가온 겨울에 대한 설렘과 다가올 추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 안에 쌓인다. 처음이라는 소중한 순간이 왔으니 이를 기념할 수 있는 음식을 저녁으로 먹으면 좋을 듯하다. 겨울의 서막을 알리는 눈. 하얀 눈을 닮은 요리였으면 좋겠는데...
그래, 오늘은 ‘꽃게찜’이다.
[꽃게찜]
1. 주방에서 사용하는 솔을 이용하여 꽃게를 깨끗이 씻고, 배딱지를 열어 배설물을 제거한다.
2. 찜기의 물이 끓으면 꽃게의 배가 하늘을 향하게 놓고 15~20분 동안 찐다.
3. 불을 끄고 5분 정도 뜸을 들인다.
빨갛게 달아오른 꽃게가 전투적으로 노려본다. 꽤나 화가 많이 났나 보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꽃게의 향에 취한 설렘이 더 크다. 서둘러 등딱지를 뜯은 후 먹기 좋게 손질한다. 등딱지에 퍼져있는 내장도 잊지 않고 박박 긁어모은다. 다음은 살을 발라낼 차례. 꽃게의 살은 어느 부위든 맛있지만 특히 꽃게의 아래쪽에 있는 넓고 평평한 다리 부분의 살은 덩어리로 들어있어 꽃게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남편은 이 부위를 ‘꽃게 엉덩이 살’이라고 부른다. 어디 가서 꽃게 먹을 일이 있으면 이 부위를 먼저 선점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오늘도 나에게 ‘꽃게 엉덩이 살’을 양보한다. 발라낸 몸통의 뽀얀 살을 내장에 푹 찍어 입에 넣는다. 꽃게가 바다에서 살았다는 것을 느껴봄직한 짠맛이 입안을 휩쓸고 지나간 후 내장의 고소함과 하얀 살의 촉촉함이 그 자리에 밀려든다. 게딱지 곳곳의 내장만 모으면 최고의 양념장이 완성되니 별다른 양념장은 필요 없다. 재료에 양념장까지 같이 들어있으니 ‘실속세트’가 따로 없다. 하지만 살짝 꽃게가 물린다 싶을 때는 별도의 양념장이 필요하다. 몸통의 부드러운 살만 따로 모은 후 초장에 비벼 먹으면 초장의 매콤함이 꽃게와의 첫 만남으로 다시 데려가 준다. 몸통에 이어 통통한 집게발의 살도 한입한다. 몸통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특히 집게발의 살은 몸통의 살보다 더 단단하여 씹는 맛이 있다. 찜기에 넣기 전에 한쪽에 남겨뒀던 꽃게 다리 몇 개를 냄비에 넣고 끓인다. 꽃게를 먹는데 라면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때 자칫 잘못하면 라면 스프의 향이 꽃게의 향을 가릴 수 있으니 스프의 양 조절에 주의해야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꽃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