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향 밥상 Dec 02. 2024

변함없는 너의 모습에 감사해

그래, 오늘은 '감자 옹심이'다.

 겨울 1일 차. 겨울철 뜨거운 국물 요리는 국룰이다. 오늘은 어떤 국물 요리를 해볼까 고민하며 문밖을 나선다.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이제 1일 차인데 앞으로 어떤 추위가 몰아치려고 이러나.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걷는데 귀가 꽁꽁 얼 것 같다. 후딱 모자를 뒤집어쓴다. 겨울에 모자를 쓰면 길 위에 따뜻한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 바깥의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모자 덕분에 아늑함을 즐기며 마트에 도착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서성이다 까만 천을 발견한다. 팻말에는 감자라고 적혀 있다. 열어보니 둥글둥글 노란 감자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너도 '너만의 공간'에서 아늑함을 즐기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감자를 안 산지 꽤 되었다. 오랜만에 감자를 사볼까. 감자가 주연인 따스한 국물 요리에는...

  

 그래오늘은 감자 옹심이.


 감자에 싹이 나서 이파리에 감자감자 싹하나 빼기! 학창 시절,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을 쏟아내며 전래 동화처럼 전해 내려온 놀이를 시도 때도 없이 하곤 했다. 특히 쉬는 시간이 되면 사정없이 책상을 내려치며 하얗게 불태웠다. 이 놀이가 감자가 덩이줄기임을 알려주는 고마운 놀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나이가 더 들어서다. 감자에 싹이 나면 먹기 힘들다는 것도. 시간이 흘러 리드미컬하게 목청껏 불러댔던 ‘감자’를 가지고 지금은 요리를 한다. 오늘 선택한 요리는 감자가 주재료인 ‘옹심이’다. 옹심이는 ‘새알심’의 뜻을 가진 강원특별자치도의 사투리다. 겨울철 많이 즐기는 음식인 새알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심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것이다. 이와 달리 감자 옹심이에 들어가는 옹심이는 이름에서 예상되듯 감자를 반죽하여 만든 것이다. 새알심의 찰기에 감히 무엇을 비교하겠냐마는 감자로 만든 옹심이의 찰기도 남부럽지 않다. 새알심은 쫄깃하다면 옹심이는 쫀득하다. 새알심은 한 입 베어 물면 쫄깃하게 늘어지는 반면, 옹심이는 한 알 베어 물면 깔끔하게 끊어진다. 재료도 단순해서 좋고, 식감도 깔끔해서 좋지만 한 가지 단점이라면 강판에 갈 때 팔이 너무 아프다는 것. 놀이를 할 때나 요리를 할 때나 감자는 내 팔을 가만히 두질 않는구나. 



 [감자 옹심이]

 1. 껍질을 깎은 감자를 강판에 간 후 면포로 싸서 볼(bowl)에 대고 물기를 짠다. 

 2. 볼을 기울여 바닥에 전분이 가라앉았는지 확인한다. (15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3. 가라앉은 전분이 보이면 볼의 물을 조심히 버리고

    바닥에 남은 전분과 면포에 있던 감자를 섞어 반죽한다. (이때 소금으로 간을 한다.)

 4. 냄비에 육수를 끓인 후 야채를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

 5. 감자 반죽을 한 입 크기로 빚어 냄비에 넣는다.

 6. 감자 옹심이가 둥둥 떠오르면 불을 끈다.          


Tip. 감자 옹심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식탁이 허전해 보인다면 곁에 둘 음식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김장 김치를 놓아본다. 뭔가 부족한데... 아무래도 단백질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닭다리살'을 구워본다. 깔끔 담백한 감자 옹심이 옆에 기름 뚝뚝 떨어지는 닭다리살 구이라니. 말해 뭐 해.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 옹심이의 따뜻한 국물을 한 숟가락 뜬다. 감자의 전분이 녹아들어 국물이 쫀득하다. 그래, 이 맛이지. 여기에 '들깨 가루'가 더해지면 구수함이 한 스푼 추가된다. 맑은 국물로 시작하여 들깨 가루를 넣은 탁한 국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먹고 싶으니까. 옹심이도 한 알 베어 문다. 단정하게 잘린 단면을 보니 아까 마트에서 봤던 다소곳함이 생각난다. 참, 너 감자였지. 갈아서 다시 뭉쳤을 뿐인데 새로운 모습, 새로운 식감으로 감자가 나타났다. 아늑한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본래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었구나. 너의 변함없는 다소곳함과 함께 평온한 저녁 시간을 만끽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