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잡채'다.
12월의 첫날이 밝았다. 연말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는지 거리가 부산스럽다. 분위기에 휩쓸려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부풀어 오르는 마음과 달리 몸은 나날이 굳어진다. 날이 추워지면서 웅크리고 있다 보니 종일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여 그런 듯하다. 집에서 쉬고 있는 나도 이렇게 뻐근한데 밖에서 일하는 남편은 오죽할까. 해가 뜰 때 출근하여 해가 질 때 퇴근하는 남편은 굳어진 몸을 녹여줄 따사로운 햇살과 마주치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남편을 위해 12월은 긴장을 녹일 따스한 밥상을 차려야 할 것 같다. 남편의 최애(最愛) 음식에 뭐가 있더라. 그중에서 최고의 음식을 첫 번째 음식으로 시작하고 싶은데...
그래, 오늘은 ‘잡채’다.
잡채(雜菜)의 잡(雜)은 ‘섞이다, 어수선하다, 모이다’를 뜻하며, 隹(새)와 衣(옷)으로 잘게 쪼개진다. 隹(새 추)에는 ‘뒤섞인 여러 종류의 새’라는 의미가, 衣(옷 의)에는 ‘여러 색이 뒤섞여 있는 옷’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가 뒤섞인’보다는 주로 ‘자질구레한’이나 ‘막된’의 뜻으로 잡(雜)이라는 글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보다는 보잘것없는 이미지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잡(雜)이 자태를 뽐낼 수 있는 때가 있으니 바로 ‘잡채(雜菜)’로 사용될 때이다. 잡채(雜菜)는 한자 그대로 야채를 섞은 음식이다. 채 썬 야채와 고기를 삶은 당면과 버무리면 우리가 흔히 아는 잡채가 완성된다. 하지만 간단한 정의와 달리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잔칫날이나 명절에 주로 먹게 된다. 야채를 각각 채 써는 것도 일이지만 각각의 재료들을 따로 볶고, 한쪽에 식혀둔 삶은 당면을 양념에 1차로 버무리고, 각각의 볶은 재료들을 넣어 2차로 버무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잡(雜)’다하고 부산스러운 요리다. 하지만 정성과 맛은 어떤 요리보다 고급스럽다. 연말 행사로 분주한 12월과 잔치음식의 대명사인 잡채의 만남이 마냥 어색하지만은 않다.
[잡채]
1. 야채는 채 썰어서 준비하고, 잡채용 고기는 다진 마늘, 후추로 양념하여 준비한다.
2. 준비한 재료를 웍(또는 큰 프라이팬)에 각각 볶는다. [각각 소금 한 꼬집]
3. 당면을 물에 불린 후 끓는 물에 삶고,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뺀다.
4. 웍(또는 큰 프라이팬)에 양념(진간장, 참기름, 설탕, 다진 마늘, 후추)을 끓이다가
(3)의 당면을 넣고 뒤적인다.
5. 불을 끄고 (4)의 웍에 (2)의 볶은 재료들을 넣고 뒤섞는다.
연말 음식의 개막식이니 오늘은 색다르게 담아 본다. 먼저 그릇에 양념한 당면을 놓고, 그 위에 각 재료들을 얹는다. 마지막으로 깨를 뿌려주면 완성. 부족한 간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추가로 간장을 넣어 맞추기로 한다.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담음새가 비빔밥과 비슷하다. 잡채가 늘 반찬으로 식탁에 오르는 조연이었다면 오늘만큼은 단품으로 준비하여 주연으로 식탁에 올린다.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당면이 붇기 전에 서둘러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다. 당면만이 가진 탱탱한 식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본의 아니게 곁들여지는 야채의 맛도 어느 하나 튀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입안을 채운다. 중간에 씹히는 고기의 맛은 또 어떠한가. 그 자체로도 맛있는 고기에 양념까지 더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불 위에서 비비는 잡채보다 온기는 덜하지만 잡채 본연의 맛은 달아나지 않았다. 잡채 한 입에 피어난 남편의 미소가 잡채 한 입에 내 얼굴로 번져온다. 오늘 잡채가 맡은 역할은 식탁에 화목을 가져다주는 내조의 여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