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청국장찌개'다.
창밖으로 저 멀리 산맥이 보인다. 하얀 눈이 내려앉은 산맥은 하늘이 그린 수묵화 같다. 자연이 선사하는 작품을 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겨울이 되면 세상이 온통 그림 같다. 하늘도, 바다도, 산도, 건물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색을 과감하게 펼친다. 한층 강렬해진 색감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살며시 귓가를 맴도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온 바람 소리가 바깥 날씨를 짐작하게 한다. 아... 나가기 싫다. 푹신한 쿠션을 품에 안고 느릿느릿 커피를 마시며 늦장을 부려본다. 그러다 문득 해가 중천일 때 나가면 그래도 덜 춥지 않을까 하는 잔꾀가 발동해 다급히 장바구니를 챙겨 현관문을 나선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오기 싫은 날, 머릿속에서는 벌써 준비가 끝났지만 현실은 아직 이불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날에 이불 밖으로 꺼내줄 음식이 필요하다. 이불 속의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줄 음식에는...
그래, 오늘은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청국장찌개’다.
돼지고기 수육은 냄비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5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끓여야 하기 때문에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그 기다림의 대가에는 맛있는 돼지고기 수육도 있지만 따뜻하게 데워진 부엌도 있다. 불 꺼진 부엌은 생각보다 쓸쓸하다. 차가운 부엌에 불은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불의 온기로 따스해진다. 여기 데운 공간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청국장’이다. 청국장(淸麴醬)은 삶은 콩을 따뜻하게 데운 방에서 발효시킨 후 띄워서 만든 된장이다. 발효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담요나 이불로 덮어 놓기도 한다. 3~4일 이불 속에서 열심히 발효된 청국장은 진한 향을 품고 이불 밖으로 나온다. 이불 속의 포근함을 몸에 한껏 지닌 채 이불 밖으로 나와 우리들에게 그 포근함을 전해준다. 장을 보고 돌아온 몸이 다급하게 온기를 찾는다. 서둘러 요리를 시작해야겠다.
[돼지고기 수육]
1. 냄비에 수육용 돼지고기를 넣은 후 돼지고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2. 생강, 통후추, 월계수잎, 된장 한 스푼을 넣고 중불 또는 중약불에서 50분 동안 끓인다.
3. 좋아하는 크기로 썰어 그릇에 옮긴다.
돼지고기 수육이 익는 동안 청국장찌개를 준비한다.
[청국장찌개]
1. 냄비에 육수를 끓인다.
2. 청국장을 끓일 냄비의 바닥에 돼지고기를 깔고 그 위에 묵은지를 쫑쫑 썰어 올린다.
(이때, 묵은지를 너무 많이 넣게 되면 김치 맛이 강하게 나기 때문에 소량만 넣는다.)
3. 야채, 두부, 청국장, 된장 한 스푼, 다진 마늘을 올린 후 육수를 붓고 끓인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막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 입안에서 녹으면 내 몸과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 두께감 있게 썰어 씹는 느낌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얇게 썰어 부드러운 식감을 즐긴다. 삶을 때 넣은 된장이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주고, 장 본연의 짭짤함을 고기에 배게 하기에 따로 양념을 찍어 먹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혹시 모를 아쉬움이 걱정된다면 참기름 끼얹은 된장이나 선홍빛의 새우젓을 준비하는 방법이 있다. 수육에 곁들이기 좋은, 가장 클래식하지만 안 먹으면 서운한 조합인 김치도 함께 준비한다. 올해 담근 아삭하고 신선한 김장 김치를 뒤로 하고, 붉은 양념이 제대로 밴 묵은지를 꺼낸다. 묵은지 특유의 새콤함과 개운함이 수육의 느끼함을 팍! 눌러주고 감칠맛을 쫙! 끌어올려준다. 불판 위에 구워 먹는 삼겹살도 좋지만 쌀쌀하다 못해 얼어 죽을 듯한 추위에는 말랑하고 촉촉한 돼지고기 수육이 최고다. 여기에 뜨끈한 청국장찌개를 더하니 무적의 밥상이 따로 없다. 청국장찌개에 청국장만 넣으면 진국일 수는 있겠지만 강렬한 맛에 오히려 쉽게 물릴 수 있다. 여기에 약간의 된장과 반의 반의 반 주먹의 묵은지를 넣으면 귀신같이 입맛 돋워주는 개운하고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완성할 수 있다. 돼지고기 수육의 따스함, 청국장이 품은 이불 속의 포근함 그리고 친정엄마의 사랑 가득한 비법들로 차린 밥상을 앞에 두니 이불 밖도 이불 속 부럽지 않게 안전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