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굴순두부찌개'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옷은 두꺼워진다.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옷을 껴입기 때문에 온몸으로 묵직한 무게가 전해진다. 옷도 무겁고, 눈꺼풀도 무겁고, 내 몸도 무겁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요즘 들어서 빈번하게 찾아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기력함이 어깨를 두드린다.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 하지만 주부는 쉴 수 없다. 주부는 집안의 일인 청소, 빨래, 옷 정리와 이불 정리, 장보기, 요리, 설거지를 한다. 집이 흘러가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부가 쉬면 집의 시간이 멈춘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 몸을 움직인다. 다행히 매일같이 살림을 하다 보니 나름의 루틴(routine)과 요령이 생겼다. 오늘처럼 몸이 무겁고 힘든 날에는 손이 덜 가는 요리를 하면 좋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고 싶지는 않다. 특히 12월은 고생한 남편을 위해서 최애(最愛)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기로 했으니 빠르게 할 수 있는 정성 가득한 요리를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새빨간 요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얼큰하면서도 입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짭짤한 요리에는...
그래, 오늘은 ‘굴순두부찌개’다.
순두부는 두부를 만들 때 물기를 빼는 단계를 생략한 두부이다. 압축하지 않은 두부라서 네모 반듯한 두부보다 식감이 더 부드럽다. 단계를 생략한 덕분에 오히려 더 부드러운 식감의 두부를 맛볼 수 있다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순두부는 그 자체에 간장 양념을 끼얹어 먹기도 하지만 찌개로 끓여 먹기도 한다. 오늘은 순두부로 칼칼하게 찌개를 끓일 계획이라서 붉디 붉은 양념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기력에 지배당한 몸은 쉽리 움직여지지 않는다. 갖은양념을 꺼내 넣는 것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에 시판용 소스를 구입한다. 특별히 오늘은 '굴'을 넣고 끓일 것이므로 바지락을 기반으로 한 소스를 골라 담고, 봉지 바지락도 하나 골라 나름의 정성을 들인다. 남편의 퇴근을 알리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생략된 단계에 힘입어 여유롭게 밥상을 차린다.
[굴순두부찌개]
1. 냄비에 순두부, 야채, 버섯, 바지락, 다진 마늘 등을 놓는다.
2. 물과 시판용 소스를 붓고 끓인다.
3. 굴, 대파를 넣은 후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끓여준다. (굴이 익을 정도만 끓여준다.)
역시 대기업의 맛. 거부할 수 없는 맛이 혀를 강타한다.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마성의 맛이다. 매콤 칼칼하면서도 뜨끈한 국물에 바지락과 굴이 곁들여지니 해산물의 풍미까지 더해져 개운함이 일품이다. 몽글몽글 부드러운 순두부가 으스러지며 국물에 풀어진다. 덕분에 칼칼한 국물에 고소함이 추가된다. 숟가락 위에 순두부, 굴, 버섯을 쌓은 후 국물에 적셔 한 입에 넣는다.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같이 먹으니 더 맛있다. 오늘은 굴을 넣었지만 여름에는 굴을 먹지 않아서 차돌박이를 기반으로 한 소스를 골라 담고, 차돌박이를 하나 골라 '차돌박이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는다. 냉장고 속 남은 버섯을 처리해야 할 때는 '버섯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기도 한다. 시판용 소스를 사용하여 단계를 줄이고 취향에 맞게 재료를 골라 넣어 다양하게 즐기는 그야말로 정성 가득한 즉석식품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