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시소카레 [시금치 쇠(소)고기 카레]'다.
12월도 어느새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길가의 붉은빛이 갈수록 짙어진다. 연말의 설렘을 담은 한 끼를 차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거창한 밥상을 차리고 싶지는 않다. 근사함은 크리스마스를 위해 아껴두려 한다. 평범한 집밥에 연말 분위기를 솔솔 뿌려줄 메뉴를 골똘히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연다. 엊그제 장을 봤으니 뭔가가 있을 것이다. 일단 밀가루 줄이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라면 한 봉지 외에 면, 빵, 만두 등의 밀가루 재료는 없다. 같이 사용하는 소스인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등도 없다. 가지고 있는 재료는 국거리용 쇠고기, 양념용 야채, 시금치, 우유, 계란이 전부다.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본다. 그때 싱크대 한쪽에 놓여 있는 고형카레가 눈에 들어온다. 카레? 아, 맞다. 저번에 바질 페스토를 넣고 끓여 먹었던 카레가 생각났다. 오늘은 시금치가 있으니 바질 대신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살짝 파스타 느낌도 나고, 오늘 나의 감성에도 딱이다.
그래, 오늘은 '시소카레 [시금치 쇠(소)고기 카레]'다.
시소카레는 '시금치 쇠고기 카레'가 너무 길어서 내가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바질을 사용할 때는 '소바카레 [쇠(소)고기 바질 카레]'라고 부른다. 시금치와 바질 둘 다 넣으면... '시금치 바질 카레'가 되겠지. 시금치 페스토를 만들어야 하니 평소보다 이른 감이 있지만 서둘러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이번 요리는 설거지가 꽤 나올 예정이니 약간의 긴장감도 준비한다.
[시소카레 "시금치 쇠(소)고기 카레"]
1. 믹서에 '데쳐서 쫑쫑 썬 시금치, 깐 마늘, 마카다미아, 파마산 치즈, 올리브오일'을 넣고 간다.
(이때 깐 마늘은 향이 강하므로 조금만 넣는다.)
2. 웍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버터를 녹인다.
3. (2)에 소고기를 볶다가 야채를 넣고 볶는다. (후추 톡톡)
4. 약불에서 (3)에 고형카레를 잘게 부숴 넣고 볶는다.
5. 약불에서 (4)에 (1)의 시금치 페스토를 넣고 볶는다.
6. (5)에 우유를 붓고 끓이다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버터를 넣고 불을 끈다.
그릇에 밥을 얹고 그 위에 카레를 부은 후 대파를 뿌려 마무리를 한다. 파와 마늘을 좋아하다 보니 어지간한 요리에는 다 넣는 편이다. 카레의 강렬한 향을 뚫고 풍겨오는 버터 향에 침이 고인다. 쌀 한 알 한 알을 카레가 잘 감싸도록 쓱쓱 비빈다. 잘 비벼진 카레를 한 숟가락 떠서 그 위에 익히지 않은 생 대파를 얹는다. 입안에 넣자마자 카레 본연의 맛과 시금치 페스토, 그리고 우유가 어우러져 녹진한 맛이 퍼진다. 그 위를 매운 대파향이 감싼다. 대파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카레의 맛을 질리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카레를 반쯤 먹었을 때는 김치를 한 조각 올린다. 역시 김치다. 개운하게 재탄생(refresh)한 입안에 처음처럼 대파를 얹은 카레를 채운다. 카레의 노란빛이 잔잔하게 몸 안에 퍼진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라서 기분만 가지고 외식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냉장고 속의 재료로 만든 식사로 12월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설렘을 맛볼 수 있다니. 집안의 따스한 온기까지 더해져 설렘이 배가 된다. 참,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