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육회, 그리고 치맛살 구이'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 하루종일 난방을 틀어놨더니 설정한 온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다 싶으면 호들갑스럽게 온도를 올린다. 우리 집 어디가 그렇게 추운지 돌아가다 멈추고 돌아가다 멈추길 반복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난방에서 예약으로 돌려 보일러를 조용히 시킨다. 야단스럽던 보일러가 잠잠해지니 손발이 점점 차가워진다. 부랴부랴 카디건을 걸치고, 수면양말을 신는다. 담요도 하나 덮고, 쿠션도 하나 안는다. 그러고 보니 벽난로가 있는 집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쬐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그렇다고 집에 벽난로를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벽난로를 대신할 수 있는 걸 찾아본다. 미니화로. 장작을 태우는 벽난로도, 숯을 태우는 화로도 아닌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가정용 미니 화로지만 불의 따스함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저녁 메뉴를 화로구이로 정한다. 온탕이 있으면 냉탕도 있는 법. 곁들일 음식으로는... 시원한 쇠고기인 육회, 너로 정했다.
그래, 오늘은 '육회, 그리고 치맛살 구이'다.
날로 먹는 음식에는 바다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를 썬 회만 있는 게 아니다. 육(陸)지의 회, 육(肉)회도 있다. 육회는 소의 살코기 등을 잘게 썰어 날 것 그대 양념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소(牛) 그 자체가 음식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과정은 그저 거들뿐이다. 재료 본연의 맛으로 즐기는 음식은 재료가 좋으면 끝이다. 그러니 오늘은 나도, 남편도 걱정 없는 저녁식사가 되겠다. :)
[육회]
1. 볼(bowl)에 양념(국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 매실청, 소금, 통깨)을 넣는다. (설탕 추가 가능)
2. (1)에 육회를 넣고 버무린다.
3. 그릇에 (2)를 잘 뭉쳐서 놓고 꼭대기에 노른자 자리를 만든 뒤 노른자를 올린다.
뜨겁게 달궈진 화로 위에 치맛살을 올린다. 시뻘건 쇠고기가 '치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는다. 싱크대에 부착된 가스레인지에서 구운 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아 식탁에서 먹던 때랑은 다르다. 먹을 만큼만 올려 바로 구워 먹으니 정말로 녹는다. 값비싼 몸이라 어떻게 먹어도 맛있지만 뜨거운 화로 위에서 집어먹는 귀하신 몸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갈색빛을 띠기 시작하면 내 가슴도 뛴다. 첫 입은 오로지 고기만 음미한다. 무슨 양념이 필요하겠냐마는 아쉬우니까 두 번째는 기름장에 콕 찍는다. 입안에 재정비가 필요할 때는 고추냉이를 고기 위에 살짝 얹는다. 어떻게 먹어도 터져 나오는 육즙을 막을 수는 없다. 활활 타고 있는 화롯불을 보며 시원한 육회를 집는다. 어라? 그냥 먹어도 맛있잖아. 하지만 육회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인 탱탱한 노른자를 터트려 양념한 육회와 섞는다. 노른자의 고소함과 끈적함에 육회의 풍미가 배가 된다. 시원하게 한 입, 담백하게 두 입.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차가운 육회의 향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뜨거운 쇠고기나 차가운 쇠고기나 모두 녹는구나, 녹아.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팔을 뻗어 양손을 냉탕에 넣은 기분이 이럴까. 노천탕에서 머리는 차갑다 못해 얼 것만 같고, 몸은 뜨겁다 못해 익을 것만 같은 기분이 이럴까. 안 되겠다. 이 기분에는 맥주가 딱이다. 냉장고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던 맥주 한 캔을 꺼낸다. 이번 주도 고생 많았어요,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