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5 혈액종양내과 전과
소화기내과 입원 2일 차
아침에 교수님이 회진을 돌며 남편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소장 위에 림프종이 있는 상태로 예후가 아주 불량할 것으로 보인다 하셨고 항암 중 종양이 터져서 패혈증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하셨다. 일단 조직검사가 시급하다고도 하셨는데 검사가 언제 될지 모르는 상태.
남편은 역시나 덤덤.. 이 사실을 시댁과 친정에 알리고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덤덤한 남편이 너무 미웠다. 혼자 속 편하게 아프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했던 순간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슬픈데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는 내 남편. 근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덤덤한 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무언가에 반응할 힘조차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불쌍한 내 남편.. 안쓰러운 내 남편..
곧이어 교수님은 목과 가슴 CT와 PET-CT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다행히 당일 PET-CT를 찍었고 영상에서는 복부에 가득히 들어있는 하얀색 덩어리들이 보였다.
(PET-CT의 원리는 암세포들이 당 대사가 활발한 것을 이용해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선동위원소를 혈관으로 주입하여 암세포에 모여있는걸 영상으로 찍는 것이다.)
목과 가슴 CT를 찍는 이유는 혹시라도 모를 암의 침범. 침범이 있다면 그쪽으로 바늘을 이용해 조직검사를 할 수 있으니까.. 근데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목과 가슴 CT는 깨끗했다.
왜 불행이냐면.. 암은 조직검사가 필수기 때문이다.
목이나 액와 쪽이라도 병변이 보이면 세침검사로 조직검사를 하면 되는데 남편은 복부에만 암이 한정되어 있어 조직검사를 하려면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의료파업 중이라 전공의가 없어 수술스케줄 잡기가 아주 힘든 상태였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하루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기도했다.
내가 고군분투하는 사이, 우리는 혈액종양내과로 전과되었다. 혈액암엔 백혈병과 림프종이 있는데 남편은 림프종. 조직검사로 아형을 확인해야 항암을 빨리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조직검사를 해서 결과를 빨리 보고 이번 주 금요일이라도 항암에 들어가고 싶었다. 남편은 하루하루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울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어찌어찌해서 외과에서 당일 조직검사를 해주겠다 했으나 마취과교수님이 조직검사는 응급이 아니니 본인 와이프가와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진짜 마취과 교수님은 본인 부인이 아파도 조직검사 당일에 안 할 수 있을까? 왜 말을 그렇게 하지? 원망밖에 나오지 않았다.
절망하며 울고 있었는데 다른 교수님께서 타 병원에 본인 지인이 있다고 지인에게 물어보니 조직검사 가능하다고 했다고.. 내일 그 병원으로 전원을 가서 조직검사만 하고 다음날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나는 바로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조직검사 안 된다 하면 전원 가겠다 했다.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난 항상 누군가에게 내 삶을 말할 때 운이 좋았었다 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가 날 도와주었었다. 그때마다 난 ’ 하나님께선 날 참 아끼시는구나, 하나님은 항상 내 옆에 계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남편의 암진단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지금까지 오만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몰입해서 뭔가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현재에 안주하며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신 차리라고 채찍질을 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정신 차렸으니 채찍질을 멈춰주세요 하나님.
앞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갈게요.
제발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주기도문에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항상 이 구절의 ‘시험’이 뭔지 궁금했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지금 ‘시험’에 들어있고 우리는 잘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