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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앤 Dec 17. 2024

사랑의 소행성

위문편지를 주고받으며

 훈련소 들어갈 때 입고 간 아들의 옷과 신발 등 여러 물품들이 택배로 도착했다. 잠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난 후에 풀어보려고 했다. 군대 간 아들의 사복을 돌려받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다른 엄마들처럼 나도 잠시 어떤 감회에 젖겠구나 생각했다. 잠시 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섰다. 옷을 담았던 박스가 사라지고 없다. 남편은 내가 껴안고 슬퍼할까 봐 미리 정리를 다해버렸다는 것이다. 박스도 벌써 분리수거장으로 사라진 뒤였다.


 테이블 위에는 편지 한 통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숨을 한번 고르며 덥썩 주워들었다. “이곳은 마치 캠프를 온 것 같고 , 반찬도 맛있고, 매 끼니 좋아하는 고기가 나와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훈련소 입소 첫날 군악대에서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합격이 되었어요. 다치지만 않으면 훈련 마치는 대로 군악대에 배치가 된다고 합니다.” 걱정할까 봐 애써 괜찮다고 쓴 흔적으로 채워진 편지였다.  


 훈련소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인터넷 편지를 쓰면 매일 출력해서 저녁에 병사에게 나누어주는 시간이 있었다. 일과를 끝내고  편지라도 읽으며 위로를 받았으면 싶었다. 시간대를 나누어 몇 줄 씩이라도 서너 통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의 편지는 일단락이 되고 무사히 군악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아들이 훈련소 들어가던 겨울 나는 3차 항암치료를 하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시린 머리 때문에 두건을 쓰고 지낼 때였다. 항암치료는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와서 자동차에 타는 것도 호흡이 안되어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부대가 인천 쪽에 있어 훈련소와 자대배치까지 받게 되어 힘든 숨을 겨우 쉬며 창문을 내린 채로 면회를 다니곤 했다. 그렇게라도 면회를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아들을 잘 아는 분들과 선후배가 80여 통의 위문편지를 써주었다. 편지를 모아서 서류봉투에 한꺼번에 넣고 보냈다. 아들은 정들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많은 힘이 되었다고 고마움을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군악대로 복무를 하며 자기의 전공인 기타를 치는 것이 나름 즐거웠는지 하사로 군 복무를 연장했다.


 제대하는 날 힘든 시간에도 용기가 되었다며 여러 편지들을 소중히 모아서 가지고 왔다. 가슴 졸이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찬찬히 내가 쓴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편지는 단지 가벼운 종이 한 장에 그치지 않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던 나와 아들 사이 무언의 격려이자 우정이었다. 인생의 어느 힘든 시간대를 절망하지 않고 잘 지나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서로 간에 응원의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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