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고리는 누가 끊을 것인가?
'며느라기'라는 드라마가 있다. 아내 말로는 모든 며느리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다고 한다. 아내도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중 최근 '명절'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를 아내와 같이 봤다. 아내와 나도 결혼 초기에는 명절을 지내며 무척 많이 싸웠다. 드라마는 마치 우리를 기록한 것처럼 그 상황과 미묘한 감정들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었고, 아내와 나는 그 동안 금기시 했던 명절 얘기를 한참 할 수 있었다.
'명절'을 그린 에피소드를 보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모두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부장제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이제 힘이 없고, 큰며느리로 시집살이를 이겨낸 어머니는 공공의 적이 됐으며,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들과 남편이 되었다. 아내는 시집에서 일을 왜 해야하는 지 의심하며 일을 하고 있다. 명절인데 모두 불행했다. 특히 약자인 여성, 가장 약자인 며느리에게 명절은 고통의 시간이다. 드라마는 그 불편함이 무엇인 지 하나 하나 보여준다.
설날에 부모님 댁에 나와 딸만 갔다. 그리고 생각만 하던 명절 얘기를 꺼냈다.
"엄마, 차례 안 지내면 안될까?"
나는 칠순을 앞둔 엄마에게 물었다.
"안 돼. 나는 차례 지낼거야."
엄마 말에 잠시 생각에 빠진다.
"엄마, 자식 잘 되라고 조상님들께 차례지는 거 맞지? 명절 지내고 나서 아들, 며느리가 싸우고 이혼해도 괜찮겠어? 그게 엄마가 바라는 건 아니잖아?"
엄마의 표정이 복잡해 진다.
"그래도 난 차례 지낼거야."
엄마의 단호한 한마디가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차례를 지내는 것처럼, 나도 내 딸을 위해 명절을 바꿔야겠어. 난 이제 추석에 안 올거야."
생각했던 말을 하기는 했지만, 과연 난 추석에 안 올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명절에 차례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차례는 조상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조상님께 고마워 할 때마다 수없이 많은 부부들이 이혼하고 헤어진다. 결과만 보면 조상님이 자손들 가정을 파탄내고 있다. 어떤 부모가 자식 안 되는 것을 바래겠는가? 조상님도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조상님께서 자손들에게 말을 전할 수만 있다면 차례를 지내지 말라고 할 것 같다. 차례를 지내는 것은 부모세대 결정이다. 부모세대가 차례를 없앤다면 자녀세대와 갈등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자녀세대가 명절을 거부하면 세대간 불화가 생길 것이기에 지혜로운 부모님들이 나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실제로 명절을 벗어난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조상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가족들하고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은 악순환이다. 세대갈등, 남녀갈등이 폭발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남편과 아내, 며느리와 시어머니, 며느리와 시누이 갈등이 일시에 폭발한다. 이 악순환은 멈춰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누가 하는 지만 남는다. 나는 먼저 나선다. 나는 딸에게 잘못된 문화는 바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결심을 했다.
'악순환의 고리는 누가 끊어야 할까?'
그래도 이 질문은 남는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 답을 명확히 보여준다. 모든 부부가 봤으면 좋겠고, 특히 신혼부부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청첩장을 내미는 회사 후배에게 꼭 보라고, 꼭 토론도 하라고 추천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