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잠시 밥 먹는 시간을 빼면 저녁내내 부엌에 서 있었다. 난 남자였고, 아들이었기에 어쩌면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은 불편했다. 그 모습 그대로 내 아내가 싱크대 앞에 서서 설겆이를 하고 있다. 어릴적 불편했던 마음이 되살아난다. 난 남편이고 늦게까지 일을 하고 왔다고 내 자신을 달래고 있는 것 같다. 먼 훗날 내 딸도 그럴도 모르겠다. 집안 일은 끝이없고 엄마들은 늘 바뻤다. 그렇게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으로 감상에 젖어 있었다. 아내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당찬 커리어우먼이었는데. 하이힐을 신고 정장을 입고 외국 바이어를 만나 협상을 하던 뒷모습 이었는데. 겨울용 슬리퍼와 츄리닝 바지와 늘어난 티셔츠 위에 앞치마를 하고 그릇을 닦고 있었다. 어느날 아내가 식기세척기를 사달라고 했고 저녁 때 아내 뒷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윤 마음을 덜기로 했다.
사실 회사 선배 장모님 장례식을 다녀 온 후 마움에 동요가 있었다. 담배 한 번 안 피운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폐암은 아마도 식사 준비하는 가스불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는데. 그래서 가스레인지를 인덕션레인지로 바꿀 때도 바꿨다.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연속해서 식기세척기까지 구매했다.
식기세척기를 싱크대 하부에 빌트인으로 하자는 말에 아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수납공간을 줄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식기세척기는 싱크대 가장자리에 덩그라니 놓이게 되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울만큼 이상했지만 아내 말에 따랐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불편해서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았다. 싱크대 바로 옆에 있어야 사용할텐데 너무 멀었다. 그릇을 들고 날라야 했으니 그럴만하다. 공간을 비우지 않았기 때문에, 식기세척기는 엉뚱한 위치에 놓여졌고 무용지물이 되었다. 다시 아내를 설득했다. 수납 공간도 최대한 살려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DIY로 싱크대 옆에 설치해 보기로 했다.
싱크대 바로 옆 수납장을 정리하고, 들어내 전기톱으로 재단했다. 그리고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다시 설치했다. 드디어 식기세척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가장 적합한 장소에 설치하였다. 딱 거기가 식기세척기의 자리였다. 사람도 물건도 제자리를 찾아야 그 가치가 높아지나 보다. 식기세척기가 제자리를 찾자 아내는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고 저녁 식사가 후 종종 아내는 게으름을 피우게 됐다. 저녁 내내 싱크대 앞에 서 있던 아내는 식탁에 조금 더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종종 마주 앉아 맥주 한 잔을 하곤 한다.
아내가 하는 집 안 일이 끝이 없듯이, 집 안을 정리하려는 내 일도 끝이 없었다. 부엌을 한 번 손 본 후 아이방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초등학생 아이 방이 아직 꼬마 놀이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아이 방 앞에 서서 한 참을 고민했다.
'과연 바꿀 수 있을까?'